제6호2면

 

 

 

추가하여 페이지별 내용을 오늘에 간추려 본다.(이미 회고록으로 올린 글을 보면서- 편집인 김안수)

결국 1979년은 12월 12일 정승화 총장을 납치하는 등의 신군부 세력의 군부장악으로, 또다시 80년 봄부터 새로운 정국의 변동을 가지게 된다.

79년 나의 국제불교도협의회의 나아갈 바 업무추진은 정세안정이 없어 옴짝달싹 무슨 일을 펴볼 수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저 관망에 있을 뿐, 도저히 시국의 불안정으로 무엇 하나 뚜렷하게 내세우고 나갈 만한 방향이 잡히질 않고 막막했다, 더구나 조계종단이 내부분열로 어렵더라도, 재가평신도 불교도의 결속을 다질 방안으로 종파를 초월한 할 일을 찾아본 것이 박재원부회장을 내세워 한마음운동을 신년부터 적극적으로 펴나가기로 한 것이었다. 최세경 회장의 개인적 입지는 kbs사장직에 있을 뿐이지, 국제불교도협의회측에 기여할 수 있는 직함으로는 하등 소용되지도 못했다. 오히려 박재원 부회장만이 유일하게 내가 지탱할 수 있도록 돕고 있었다.

그래서 1979년 12월 15일 제2차 정기총회를 통해 [세계종교평화통일 한마음운동본부]를 병설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