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호2면

 

 

 

추가하여 페이지별 내용을 오늘에 간추려 본다.(이미 회고록으로 올린 글을 보면서-편집인 김안수)

<81.5.31 4차 정기총회를 마치고-총회결과를 공지하고, 새롭게 추진을 모색하며 국제불교회보를 연속해서 발간하고자 했지만, 국제불교도협의회 인수측이 회보발간을 이어가지 못해, 이것이 마지막 발간으로 남게된 것 같다.>

이러고 있을 때 도안스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시 한국에 들어왔다는 소식이다. 양재동쪽인 듯 그곳으로 와 달라 하신다. 가보니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출범(1기 81.6.5~83.5.31)으로 이때 해외(LA)지역 평통위원에 위촉되어 제1기 출범회의 개최(81.6.5)에 참석차 오신 것이었다. 공식회의에 들어가기전 잠시 나를 만나 소식을 알린 것이다. 회의참관에 필요한 항공여비를 평통에서 해주어 다시 오게 되었다고 하셨다. 겸사해서 11면보살 이운식을 위해 오신 것이다. 칠보사에서 LA불교문화회관건립 자문위원회 결성 일을 보고 조감도를 가지고 미국으로 되돌아가신지 달포 만에 또다시 2차에 걸친 고국방문을 하신 것이다. 그때 평통출범이 없었다면, 도안스님은 11면보살 모셔가는 일만도 힘에 벅찼을 것이다. 그때 평통회의로 항공권일체를 정부에서 부담했었기 때문에 겸사해서 불상만 미국으로 모시고 갈 수 있는 이운식 행사만 치루면 추가여행경비 안들이고 관련된 일들을 끝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그렇지 안했다면 이미 3월말 나왔던 스님이 무슨 경비로 2차 방문에 7월 19일 11면보살 이운식까지 할 수 있었겠나싶다. 지금 와서 보니 그때 스님은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으면서도 어차피 해야 할 일로 11면불상 모셔가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겸사해서 도안스님은 1981년 6월 1일 제2차로, LA불교문화회관건립기금 모연(표지에 조감도를 넣은 권선 소책자)운동 한국 전개를 위해 또다시 일시귀국 할 수 있었고, 나는 이때 11면 관음보살상(사진 위)작가로부터 받아둔 기증서류를 바로 전달하고, 이운식에 나오도록 김홍복을 안내한 때였다. 그래서 1기 평통회의 공식일정을 보시고, 도안스님은 11면관음보살상 이운식 일정을 잡는 등 1981년 7월 5일부터 LA불교문화회관건립기금 모연문 100권을 조계종단 전국 각 교구 및 평신도단체장을 예방하고 배부하며 다니셨고, 마침내 1981년 7월 19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과 전국신도회 후원으로 나성불교문화회관에 봉안할 11면관세음보살상 이운법회를 신도 및 귀빈 2천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조계사법당에서 성대하게 마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서 부산으로 불상을 모시고 가서 배편에 미국 롱비치항으로 운송절차를 끝낸 후, 스님은 다시 곧바로 미국으로 들어가셨던 것이다. 이때 스님은 그동안 모금사업에 필요한 국내 저명한 작가 동양화 등 서예작품을 갖고서 미국에서 모금전시회를 열고자 대작50여점의 작품을 기증받아 모은 것을 표구액자 작업이 미국에서는 표구가 어려우니 이곳 표구점에다 일괄하여 맡겨놓고서, 완성되면 나에게는 항공편으로 탁송을 의뢰하고서 미국으로 들어가신 때다.

이때에 LA관음사 81년은 무슨 일을 해왔나 살펴보기로 한다.(관음사 20년사에서 다음과 같이 간추린다.)

1981년 6월 1일 제2차로, LA불교문화회관건립기금 모연운동 한국 전개를 위해 도안스님 본국에 일시귀국 -(이때 11면 관음보살; 작가로부터 기증서 받음)

1981년 7월 5일부터 LA불교문화회관건립기금 모연문 100권을 조계종단 전국 각 교구 및 평신도단체장을 예방하고 배부함.

1981년 7월 19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과 전국신도회 후원으로 나성불교문화회관에 봉안할 11면관세음보살상 이운법회를 신도 및 귀빈 2천여명이 운집한 가운데 조계사법당에서 성대하게 치룬 기념법회가 있었음. 이 11면관음보살상은 제9회 불교미술전람회(80년10월22일-11월4일 총무원불교회관)에서 최고상(종정상)을 수상한 김홍복, 이명진씨의 역작인바. 작가들의 기증동의를 김안수가 받아내어(81년 4월 중순경/장무익과장 알선) 도안스님께서 이운해 가도록 연락을 취해 이루어진 행사였음.<한편 이 불상은 부산에서 배편으로 LA롱비치항으로 이운되었는데, 그때 롱비치에서 다시 고속도로를 타고 관음사까지 이운한 트레일러가 앞바퀴가 둘 중 하나가 없이 불상은 뒷바퀴 쪽으로 미끄러져 옮겨지어 안전하게 모셔진 채 도착된 것을 목격했던 관음사 용택스님이 확인을 하게 되어 모두들 놀랐던 일, 신비했던 일이 전해지고 있는 11면 관세음보살님이시다.>

1981년 8월 16일 명성여고 합창단 초청공연이 레이크-레이크팍에서 인간문화재 이동안, 이매방, 공옥진, 이종만씨 외 10여명의 기능보유자와 함께 기념공연이 있었음.

1981년 9월 20일 제8회 코리안퍼레이드에서 관음사가 영예의 대상을 받음.

1981년 10월 3일 인도 이인호(화백) 초청 승무공연 - LA하이스쿨에서 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