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호2면

 

 

 

추가하여 페이지별 내용을 오늘에 간추려 본다.(이미 회고록으로 올린 글을 보면서-편집인 김안수)

도안스님은 칠보사에서 1981년 4월 10일 LA불교문화회관건립 자문위원회 결성을 보고 미국으로 다시 들어가셨고, 나는 시간 여유가 생긴 듯 했다. 81년 4월26일엔, 나는 대한불교청소년교화연합회 대구지부 행사에서 국제불교도협의회 상임부회장 자격으로 참석하여 축사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사진 아래)

<연단에 축사하고 있는 필자, 오른쪽 줄에 성수스님, 석주스님, 월산스님이 눈에 띈다. 81년 4월 26일 대구시민회관에서 2천3백여명의 신도, 학생불자가 참집한 가운데 개최된 불교청소년 윤리강령선포 5주년 전국대회에서 격려사를 하던 장면이다.>

이러고 있던 중에 이번에는 전국신도회 사무총장을 75년부터 6년간 줄곧 맡아왔던 이건호법사가 신도회 일은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서 나를 찾는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것은 불교법인체가 필요하단다. 그는 지금 장영자(보각행)보살을 돕고 있는데, 대만에 있는 지남궁 같이 큰 불사를 계획하고 있다 했다. 그래서 새로 법인허가를 내기 위한 절차보다 기존에 있는 불교법인을 찾는 중이라고 하면서, 국제불교도협의회를 거론해 온 것이다. 보각행 보살은 하은려 이사장을 통해 알고 있었고, 박재원 부회장과 내가 함께 혜정스님 소개로 만남의 자리(식당)에서 서로 인사를 나눈 바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녀를 특별하게 영입할 생각을 두지 안했기 때문에, 별로 마음을 둔 바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이야기가 다르다. 어차피 나는 국제불교도협의회 공석중인 회장 영입이 필요했고, 이제는 더 이상 나의 힘에 벅찬 국제불교도협의회 일은 다른 분들에게 승계시키고자 내심 마음을 굳히고 있었던 때였다. 오히려 잘됐다싶어 조건을 제시했다. 다 좋은데 이사장은 장보각행 보살이 맡고, 회장은 그래도 남자로 불교계에 내놓아도 덕망에 손색이 없는 참신한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엔 정계불자로 최영희장군이 합당하다고 봅니다. 장보각행보살도 인맥이 닿을 겁니다. 그렇게 하겠다면 절차를 밟아 승계하겠다고 확약했다. 장보각행을 대표로 영입할 수는 없다고 분명히 밝히고, 나는 계속 한직의 임원으로 있겠다고 못 박고 헤어졌다. 그리고 난 뒤 연락이 오기를 나의 뜻을 받아드리겠다고 해서, 그럼 절차상 먼저 후원금을 내서 그간 밀린 사무국 운영비(근무자 봉급, 기타)를 정리할 수 있게 돕고, 그 뒤 날을 잡아 이사회 소집을 통해 이사장 선출을 먼저 해놓고, 최영희 회장 선임건은 이사장이 맡아 곧바로 이행하여 대표자 교체신고를 할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아오라고 했다. 이때가 5월 중순쯤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