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호2면

 

 

 

 

 

 

 

추가하여 페이지별 내용을 오늘에 간추려 본다.(이미 회고록으로 올린 글을 보면서-편집인 김안수)

80년의 한국불교계는 어땠을까. 조계사(집행부)측과 개운사(종회)측으로 양분돼 법정시비와 무력대결 등을 벌이며 팽팽히 맞서온 조계종내분이 3년 만에 수습됐다. 1980년 3월 30일 양측은 종회의원 총선에 합의한다. 1980년 4월 17일 전국 24개 교구에서 제6대 중앙종회 의원 총선거를 실시하여 69명의 종회의원이 선출된다. 4월 26일과 27일에 걸쳐 중앙종회가 개최되어 총무원장에 송월주, 종회의장에 황도견, 종회부의장에 유월탄과 정초우를 선출한다.

그러나 송월주 총무원장 체제의 출범은 3년 동안 계속된 조계사 측과 개운사 측의 종권분쟁을 완전 종식시키지 못하고, 법적인 통합을 이루는데 지나지 않았다. 당시 종회는 종정 선출 문제를 놓고 이성철과 최월산을 추대하려는 양측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에 조계사 측과 개운사 측 어느 쪽도 과반수 득표를 얻지 못하여 결국 추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5월 7일 다시 종회를 열어 종정 추대를 재시도 했으나 총무원장과 종회 정·부의장 등을 모두 개운사 측이 독점한 것이 문제가 되어 조계사 측과의 분쟁은 다시 재현된다.

5월 13일 개운사 측는 조계사 측의 총무원을 강제로 점거한다. 갖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내부분열은 지속되고, 월주스님은 내부적으로는 자체정화의지로서 '불교정화추진본부'를 결성하고 외부적으로는 '불교관계법 개정요구 결의대회'등을 개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