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존재는 사람이다

lomerica
전체글COLON 275
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가장 위대한 존재는 사람이다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수) 01 25, 2017 9:30 am

#
부처님이 태어나서 첫 번째로 한 말씀이
‘천상천하유아독존’란 말입니다.
천상천하에 가장 존귀한 것이 사람이란 뜻입니다.

인간은 생각을 하는 존재요
생각으로 원하는 바를 이루는 창조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은 무한한 창조적 능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 태어나기가 어려운 것은 마치 눈먼 거북이가 100년 만에
바다위로 올라와 구멍 뚫린 널빤지를 만나 그 구멍에 목을 내밀고
숨을 한 번 쉬고 들어 갈만큼 매우 어려운 확률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맹구우목(盲龜遇木)이라 합니다.
이렇게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어려우며 그만큼 사람이 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각을 하는 존재로 원하는 바를 창조하는 무한한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무한한 잠재적인 힘 속에는 스스로 ‘내가 부처하는 것을 확연하게 자각하는 힘’도
있습니다.

신학(神學)을 전공하는 독일의 유학생이 한국에 와서 저명한 비교종교학자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신(神)은 있습니까?”

이에 그 학자는 명쾌하게 대답했습니다.
“신이 있다고 믿는 자에게는 반드시 신은 실재하고
신이 없다고 믿는 자에게는 반드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결국 사람의 마음에 따라 신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불교적인 관점에서 말하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말이 됩니다.
즉 ‘모든 것은 마음으로 만든다. 마음으로 모든 것을 창조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든 것을 마음으로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는 존재가 하느님이라고 한다면
사람은 창조주인 하느님이라는 말도 됩니다.

#
경동교회의 강원룡목사는 하느님이란 “남을 위해 사는 정신(精神)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이타적인 존재가 부처님이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위해 무엇인가 창조해 가는 사람은 분명히 부처님이요, 하느님입니다.

#
500년 전에 지구가 둥글다 하여 수도원 신부가 분형(焚刑)당하였습니다.
‘지구는 둥글다.’ 하고 니콜우스 코페르니쿠스가 (1473-1543)지구의 지동설을 주장했습니다.
그때 모든 지식인들 특히 천주교 에서는 그를 미친놈이라 하고 반역자라 하였습니다.

지구가 돈다면 바다물이 거꾸로 쏟아질 것이질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황청에서 그를 옥에 가두고 나중에는 그를 생화장시켜서 죽였습니다.
그에게 마지막 회개를 종용했지만 그가 죽으면서 남긴 유명한 말이
“나는 죽어도 지구는 돌고 있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진리를 주장하다 불에 타 생 매장 당하고 도덕에 어긋난다고
쫓겨난 사람도 있습니다.

그때 당시의 상식과 지식으로는 용납될 수 없는 주장이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이 오늘날 우리들도 자기 철학과 상식에 맞지 않는다고 어리석은 짓을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
무선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은 이태리 출신의 굴리엘모 마르코니다.
그는 어린아이가 어머니 젓을 빨 때부터 성욕이 일어난다고 주장하여
성의 모독으로 이태리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생활하면서 무선전화기를 성공한 사람입니다.

#
근대 물리학의 거장은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뉴턴의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새로운 진리의 발견이란 것은 그때 당시의 학문이나 진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배척당하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수행하여 도(道)를 증득한다는 주장을 비웃는 사람들이 오늘날도 부지기수 입니다.
해탈과 열반을 구하는 구도자를 미쳤다고 비웃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특히 이웃 종교인 기독교가 가장 심합니다.
마치 코페르니쿠스 당시 지구가 둥글고 돈다는 주장을 믿지 않았던 사람과 똑 같습니다.
그 당시 천주교에선 천지창조의 하느님을 모독한다는 논리라고 그를 불에 태워 생화장 시켰습니다.

오늘날도 진리에 눈이 어두운 자는 지구상에 득실득실합니다.
자기 종교만이 최고라는 아집에 쌓여 지금도 ‘불신지옥 예수천당’을 외치며
무서운 독설을 내뿜고 있습니다.

#
아미타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의 마음이 우리 마음속에 다 들어 있다고 하는 말을
믿지 않는 사람도 많습니다.
모든 것이 일체유심조요 마음으로 이루어진다는 말도 잘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을 하는 존재로, 모든 것을 창조해 내는 존재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타적인 사람이 부처요, 하느님이란 말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치 중세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둥글고 돈다는 주장을 했을 때’ 믿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미타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은 우리의 마음속에 다 존재합니다.
아미타부처님을 생각하고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는 순간 곧바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내와 아미타가 둘이 아니요,
나와 관세음보살이 둘이 아님을 확실히 믿고 알면
나는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란 영원한 생명 속에 미증유의 세계를 개척하여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천당과 극락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가 돈 다는 이치를 부인하는 마음만 지워버리면 진리를 보듯이
극락과 천당은 반듯이 존재 한다고 믿으면 반드시 존재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마음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부처님과 불보살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마음을 내어 서원을 세우는 것도
마음의 작용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중생을 구제하여 부처로 인도하겠다는 서원이 바로 부처님의 서원이며
이를 본원(本願)이라 합니다.

법우님들
우리는 부처입니다.
무한한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다만 스스로 부처인지 무한한 능력의 소유인지를 모를 뿐입니다.
그것은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구름에 쌓여 부처님의 성품을 모를 뿐입니다.
그래서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구름에서 벗어나면
어둠을 밝힐 태양 같은 밝은 지혜가 나옵니다.
그 지혜로 나도 구하고 남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사람은 가장 위대한 존재입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인 것입니다.
먼저 내가 부처라는 자각을 철저하게 하고
내가 부처 행동을 하는지 부처 말을 하는지
부처 생각을 하는 지 늘 살펴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는 이기적인 나가 아닙니다.
이기적인 나를 벗어난 ‘이타적인 나’를 말합니다.
그것은 무아(無我)입니다.

무아(無我)의 마음은 청정한 마음입니다.
청정한 마음은 시비분별이 없습니다.
동체대비 마음으로 무아(無我)요, 이타적인 마음입니다.

내가 이타적인 마음을 가진 부처라는 자각의 시작은
바로 부처님을 생각하는 염불(念佛)입니다.

다시 돌아감:

접속 중인 사용자

이 포럼에 접속 중인 사용자: 1 그리고 손님들 0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