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대한민국, 공동체적 가치 회복에 앞장서야”

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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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헬조선 대한민국, 공동체적 가치 회복에 앞장서야”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목) 06 30, 2016 2:29 pm

명법스님 ‘무위의 공동체를 그리며’ 주제로 53선지식 구법여행서 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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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공부하고 조계종 교육아사리를 지낸 명법스님<사진>이 불교신문과 조계사불교대학총동문회가 공동 주관하는 53선지식 구법여행 초청법사로 나섰다. 명법스님은 지난 24일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여덟 번째 법회에서 ‘무위의 공동체를 그리며’를 주제로 법문했다.

이날 조재연 조계사불교대학총동문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특강을 통해 대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하근기에서 상근기로 나날이 발전해 수승한 법렬 느끼는 도반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명법스님은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홍익대 대학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또 조계종 성보보존위원회 위원, 한국의전통산사세계문화유산등재추진위원회 전문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달라이라마방한추진위 추진위원 등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미술관에 간 붓다>, <미국 부처님은 몇 살입니까>, <한권으로 보는 세계불교사> 등이 있다. 53선지식 구법여행은 매월 한 차례 출·재가 오피니언 리더를 초청해 법문이나 강연을 듣는 자리로, 오는 2019년 3월까지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다음은 스님의 법문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최근에 휘어지는 멀티텝을 하나 구매했다. 보통 구멍이 여러 개라도 공간이 부족하면 다 꼽을 수 없는데, 이번에 산 멀티텝은 정말 괜찮은 제품이었다. 훌륭한 아이디어 하나로 편리한 세상을 만들었다. 미국의 한 대학생이 아이디어를 내고 여러 전문가가 참여해 이 제품이 탄생했다. 제품을 팔아 최초의 아이디어 제안자와 자본을 댄 사람들, 디자이너 등 제품 생산에 공헌한 각자 기여도를 정확히 따져 수익금도 정확히 분배한다고 한다.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다. 과거에는 노동력이 부를 창출했다면, 지금은 정보가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사람에 의해 세상이 변할 수 있다. 앞으로의 기술발전은 아이디어와 새로운 정보가 잘 결합되면서 이뤄 질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국이라면 이런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아이디어를 낸 사람보다는 돈을 투자하거나 아이디어를 가져간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번다. 최초 아이디어를 제안한 사람에게 돈이 돌아가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대한민국 현실이 이렇다. 과연 기술의 진보가 일어날 수 있을까. 기술의 진보도, 변화도 일어날 수 없다. 한국을 아이티 강국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베끼기를 통해서였다. 선진국이 했던 선진제품을 빨리 모방해 비슷한 성능을 가진 재품을 저렴하게 만들어 이만큼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첨단의 중심에 서 있다. 첨단에 있다는 뜻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뜻이다. 더 이상 베낄 것도 없고, 이제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비전을 만들어내야만 앞장설 수 있다.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있고 활동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야 할 때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어떤가. 한국이 지옥과 같다는 ‘헬조선’, 좋은 재산을 물려받으면 ‘금수저’, 돈도 없고 재능도 없으면 ‘흙수저’ 등 오늘날 대한민국을 설명하고 있는 키워드들이다. 여러분 자녀들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다. 젊은이들을 절망케 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가진 독특하고 새로운 생각을 포용할 수 없는 사회 시스템이라고 생각한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포용하고 시스템으로 보상하는 체계가 필요하다. 적어도 좋은 자본주의가 되려면 서로 역할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하고 받은 만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합리성이 있지 않다면 건전한 공동체를 형성할 수 없다.

요즘 ‘힐링’이다, 치료다 이런 말 많이 하는데 이를 위해 불교적 명상도 많이 한다. 하지만 원인이 변하지 않으면 그것은 그냥 잠시 위로를 주는 것에 불과하다. 원인은 원치 않는 것을 하게 만드는 것 인간으로서 지키고 싶은 기본적인 것까지 내 버려두고 돈이면 뭐든지 감내해야 하는 그런 조건들이 문제다. 지금처럼 돈이면 모든 것이 되는 세상은 없었던 것 같다. 심지어 감정까지도 돈을 위해서 다 제공해야 한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고객님 섬기겠습니다’ 하는 이런 말을 하게 만든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 우리는 이를 두고 자기 수행으로 삼으라며 좋게 말하지만 원치 않는 것을 하는 일이 쉬운 일인가. 서로가 살아남기 위해 못할 짓을 하게 만드는 사회가 됐다.

젊은이들이 자조적으로 말하는 헬조선이 지금 우리의 초상화다. 불교계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불교계도 많은 부분이 자본주의화 되어 가고 있다. 사찰과 스님들 사이에 빈부 차이가 생기고 있다. 불교의 이상에 따른다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성하고 생각해 볼 문제다. 정말 어려운 문제다. 살아남아야 하고 싫은 일을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 한다. 자본주의적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

문제는 우리 사회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주지 않는다. 엄청난 능력을 갖고 있는데 발휘할 공간이 없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인가,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 자신이 주인이어야 한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돈이 주인이 되면 안 된다. 내 자신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의 본연은 스펙에 있지 않다. 나의 노동을 내가 처리할 권한을 갖고 싶다는 것, 수동적 저항은 무엇을 함으로 해서 내가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닌 하지 않는 것도 주인이 될 수 있다. (돈을) 덜 쓰고 안 쓰는 삶에 적응하고 만족하면 누구도 여러분을 건드리지 못한다. 안 써도 보람 있고 행복하다면 누구도 여러분에게 ‘갑질’을 할 수 없다. 무언가 하는 것이 유위라면 안 하고도 주인이 될 수 있는 무위의 주인이 됐으면 한다.

수행을 할 때 항상 무언가를 얻기 위해하고 있다. 여러분이 절에 와서 기도도 하고 공덕도 짓고 그럴 때 어떻게 하고 있나. 뭘 얻어야지 하는 생각이 있다. 낮은 수준의 얻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금강경>은 깨달음을 구하려고 하지도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 내려놓으라는 말도 가장 높은 단계인 깨달음조차도 구하려고 하지 말자. 마음의 움직임 속에서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수행은 무위의 수행도 아니고, 그것은 수행이 아니다. 일어나고 꺼지는 그 마음을 가만히 있게 만드는 것은 움직이게 하는 것 보다 더 힘들다. 세상을 살면서 안 하는 행위 또한 엄청나게 어렵다. 수행하면서도 뭔가 이만큼 했노라고 스스로 결과를 보여주려고 한다. 나 자신에게도 그것을 보여 주려고 한다. 그리고 만족한다. 3년 동안 3000배 했어 하면서 자부심 가질 만큼 내가 뭘 했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유위에 떨어지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 그냥 삶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상태 내가 주인인 세상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하려고 하는 게 현대인의 병폐다. 안 하면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노동을 팔아 필요한 것을 얻는 자본주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안 하면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바쁘다. 다른 한 편에서 보면 세상에 문 닫고 아무것도 안하는 폐인도 꽤 많다. 오타쿠족이 굉장히 많다고 한다. 사회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일을 덜어내도 삶의 큰 지장이 없다. 안 하면서 놓을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불자들이 갖는 한계가 뭐냐면 나만 잘하면 됐지 뭐 나만 수행 잘하고 열심히 일하고 간섭하지 말고 이런 생각에 빠지기 쉽다.

불자들에게는 공동체적인 사유가 필요하다. 공동체적인 사유를 하다보면 외적인 집단이 원하는 것으로도 눈을 돌리게 된다. 불교적으로 우리 삶은 타인과 전부 연결돼 있고 타인이 없으면 여러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불교는 사회활동 분야에도 약했다. 타인과 소통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내 이야기 만하면 소통이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불협화음이 있더라도 당연하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불자들은 공동체적인 사유가 부족하다보니 불협화음이 생기면 나쁜 일도 좋게 지내자 하면서 얼버무리고 지나가기도 한다. 불협화음을 감당하면서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스님들의 독특한 공동체가 오래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삶을 유지해 왔다. 역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희유한 일이다.

이것은 바로 각각이 무위의 존재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부대중은 다 이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 여러분 자신도 연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삶과 연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강요당하고 강요를 하는 것이 아닌, 서로 지분을 정확히 인정해 주고 분배하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스스로 주인이 되는 방법은 하지 않음으로써 내 자신이 결정권을 갖는 존재로서 살아야 한다. 을들은 원치 않는 일들을 하고 있으면서 세상이 문제라고 한다. 그 무위의 가치를 갖고 우리 자신들이 주인이 되는 것,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만나고 북돋아 주고 인정해 줘야 한다. 그러다 보면 작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인정받게 되고 그것이 또 공동체에 기여하게 되면 사람들도 더 열심히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불교를 ‘무위’다 하는데 가만히 있는 것이 무위가 아니라 하지 않을 것을 안 하는 것, 거부하는 것도 무위이다. 여러분 삶에서 진짜 주인이 되어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과 불자로서 해야 할 일은 감수해야 한다. 명상을 하는 이유가 머리가 좋아지고 능률을 높이기 위해서도 하지만, 진정으로 명상 하는 것은 무엇을 하지 않는 그것을 익히기 위해서다.

2016.06.27 / 불교신문- 홍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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