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말을 한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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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나무가 말을 한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월) 04 03, 2017 8:33 am

인디언들은 단순하고 기품있는 삶을 살았다.
얼굴 흰 자들은 우리를 가난하다고 업신여기지만
그것은 인디언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다.

인디언들은 가난한 삶을 가장 기품있는 삶으로 여겼으며
조금도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유를 주장하는 삶이 인디언들에게는 하나의 수치였다.
우리는 법이 없이도 위대한 정령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 왔다.

당신들 얼굴 흰 사람들은 우리를 야만인 이라고 여긴다.
당신들은 우리의 삶을 이해하려고 시도하지 않는다.

우리가 태양과 달과 바람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면
당신들은 우리가 우상을 숭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무런 이해도 없이 우리를 길잃은 영혼들이라 단정짓는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방식이 당신들과 다르다는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태양과 달 나무 바람 산 거의 모든 것들 속에서
위대한 정령의 작업을 보아왔다.
이따금 우리는 그런것 들을 통해 그에게 다가가곤 했다.

그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인디언은 자연과 가까우며 자연을 돌아 보시는 이는
결코 어둠 속에서 살지 않는다.

나무가 말을 한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그렇다 나무들은 말을 한다.
서로에게 말을 하며 당신이 들을 줄 안다면 당신에게도 말을 한다.

문제는 얼굴 흰 사람들이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디언에게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데 어떻게 자연의 소리를 듣겠는가?
하지만 나무들로 부터 나는 많은것을 배웠다.

때로는 날씨에대해 때로는 동물에 대해
그리고 때로는 위대한 정령에 대해.

얼굴 흰 사람들은 인간이 인쇄한 종이에 너무많이 의존한다.
나는 위대한 정령의 책에 더 눈길을 돌린다.

위대한 정령의 책이란
바로 그가 창조한 이 세상이다.

자연을 잘 공부해 보면 그 책의 많은 부분을 잃은것이 된다.
당신이 갖고있는 책들을 태양아래 내다놓고
눈과 비와 곤충들에게 잠시동안만 맡겨둬 보라.
그러면 아무것도 남지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정령은 당신과 나에게
자연계속의 우주 숲과 강물 산 그리고 우리를 포함한
동물들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산과 언덕은 도회지의 벽돌 건물보다
언제나 아름답다.
당신들도 그것을 알 것이다.

도시속에서의 삶은 인위적이고 가식적이다.
사람들은 흙을 거의 밟아보지도 못한채 살아가고 있으며
꽃나무라고 해야 화분에 심어진것 뿐이다.

그리고 보라.
별들로 수놓아진 밤하늘 대신
거리의 불빛이 시야를 빼앗는다.

사람들은 자연을 만드신 이의 풍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아갈 때
그분의 법칙을 잊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다.

오지부웨족 추장 카게가가보우(조지코프웨이) 역시
유럽인들과 인디언의 차이를 분명한 어조로 지적했다.
영국인들은 대체로
고상하고 너그럽고 말과 행동이 자유로운 편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특권과 종교적인 생각 학식 포용력
그리고 물건을 만들어 파는 능력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리고 자신들과 같은 민족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에 영국인 만큼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민족은 또 없을 것이다.
그들은 외국인들을 마치 달나라에서 온 사람들처럼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들은 정말 부지런하며 대체로 정직하고 올바르다.

하지만 너무 사업에만 관심을 가진 나머지
내가 보기에는 지나치게 세속적이다.

그 결과 자신들의 영혼과 신에 대해선 생각할 여유가 없다.
그들의 목표는 오직 돈 돈 돈 돈을 벌라.
부자가 되라.
그러면 신사가 된다는 것 뿐이다.

이런 정서때문에 그들은 돈이 될만한 것
을 찿아 뻘떼처럼 사방으로 돌아 다닌다.
자신의 가슴에 그토록 값진 보물이 있는 것도 모르고....

인디언 사회에는 문자로 씌어 진 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진 관습이 우리를 인도하는 유일한 법이였다.
옳다고 판단되는것과 거리가 먼 행동을 하는것은
각자의 자유지만 그런 행동은 부족의 비난을 면치 못했다.

부족의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강한 유대감을 형성해 그 사회 전체를 명에로운 공동체로 만들었다.
자연의 넓은 품에서 나는 태어났다.

나무들을 부르면
나무들이 어린 내 팔다리에 그늘을 드리워 주었고
하늘을 부르면 푸른 하늘이 이불처럼 나를 덮어 주었다.
나는 자연의 아들이며 언제나 자연을 사랑했다.
자연은 나의 영광이 되리라.

자연의 얼굴 자연이 입은 옷 그 이마에 두른 화관
그 계절들과 위엄있는 떡갈나무들
그리고 대지위에 드리워진 곱슬머리인 늘 푸른 나무들
이 모든것이 자연에 대한 나의 변함 없는 사랑을 가지게 한다.

자연을 바라 보노라면 내 가슴속에는 기쁨의 감정이 물결친다.
해변가의 흰 파도들처럼 내 가슴 가득 기쁨의 물결이 밀려 온다.
나를 자연의 품안에 있게 해준 이에 대한 감사의 기도가 일어난다.
많은 부에 둘러싸여 궁전에서 태어나는 것도 좋은 일이리라.
하지만 대 자연의 넓은 품안에서 태어나는것은 더 축복받은 일이다.

아니다!
우리 인디언들이 왜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란 말인가?
그것은 당신들이 우리에게 덮어 씌운 누명이 아닌가?
자연속에서 살아가고 바위와 흩날리는 나뭇 잎과 고요한 시냇물에
자기 자신을 비춰보는 사람들이 어찌 폭력적일 수 있단 말인가?

나 이곳에서 태어나 많은 행복을 누렸으니
넓은 하늘지붕이 나를 감싸고 수목의 듬직한 팔들이
나의 거처가 되었다.

황금기둥으로 장식된 대리석 궁전에서 태어나는 것 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

자연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자연그대로 이지만
궁전은 머지않아 무너지고 폐허가 된다.

그렇다.
수천년이 흘러도 나이아가라 폭포는 변함없이 나이아가라 폭포일 것이다.

그 이마에 드리워진 무지개화관은
태양이 떠 오르고 강물이 흐르는 한 영원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교하게 보호하고 보관한다 할 지라도
인간의 예술작품은 빛이 바래져 곧 먼지로 돌아가 버린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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