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송 한구절의 공덕으로

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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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게송 한구절의 공덕으로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월) 02 06, 2017 4:05 am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서천 제22조 마나라존자의 게송을 통해
희비애락 애오욕 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기를 희망합니다.

심수만경전 (心隨萬境轉) 이요
전처실능유(轉處悉能幽) 라
수류인득성(隨流認得性) 하니
무희역무우(無喜亦無憂) 라

마음은 만가지 경계를 따라 구르나
그 구르는 곳마다 모두 다 깊고 그윽하다
흐름을 따르더라도 그 본 성품을 알면
가기에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나니.

이 게송이 나오게 된 경위는 이렇습니다.
마나라 존자에게는 학륵나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그가 이르는 곳마다 항상
5백마리의 학이 따라 다니는 장관을 이룹니다.

제자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마나라 존자가 말하기를
학륵나 존자는 제4 겁중에 비구가 되어
용궁에 공양청을 받아 가게 되었다.

그때 학륵나 존자는
“스님은 늘 평등공양을 주장하면서
왜 스님만 용궁의 공양청에 가려하느냐”
는 제자들의 말에 하는 수 없이

아직 공양 받을 수행과 복이 되지 않는
제자 5백명을 데리고 용궁 공양을 갔다.

그 후로 다음 생을 받을 때 마다
여러 나라에서 태어났으되
그 5백명의 제자들은
복이 적고 덕이 없으면서
용궁의 공양청에 억지로 간 과보로
후생에 날개 달린 종족으로 태어나게 되었고
전생에 학륵나 존자에게 입은 은혜를 생각해
따라 다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학륵나존자가 묻습니다.
무슨 방편을 써야 그들을 해탈케 할 수 있느냐고.

그러자 마나라 존자가
앞서의 게송을 설했고 게송이 끝나자
5백마리의 학의 무리들은 모두 슬피 울며
작별을 고하고 떠나갈 수 있었다 합니다.

학들은 마라나존자의 게송을 듣고
나름 학륵나에 대한 집착을 여의고
떠나 갈 수 있었으니
게송 한구절의 가치가 이러합니다.

다시 한번 읽어 보십시요.
마음은 만가지 경계를 따라 구르나니
그 구르는 곳마다 모두 다 깊고 그윽하다
비록 흐름을 따르더라도 본 성품을 알면
거기에 기쁨도 없고 슬픔도 없나니.

공양에 응할만큼의 수행과 복력이 부족함에도
용궁의 공양청에 반드시 가야겠다 주장하다가
결국은 오랜 시간동안 학의 무리로 태어남을 생각하면
한생각 잘못된 망상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동아줄이나 그물망과도 같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겁에 인연으로 좋은 스승을 만나
게송 한구절 잘 얻어 들은 공덕으로
윤회의 고통을 벗어나서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이와같은 놀라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한생각 돌리면 머무는 자리마다
금강보좌가 됨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가사를 복전의라 하는데
설령 중생들의 복전이 되는 가사를
장삼 위에 수하는 승가 대중이라 할지라도
복전이 될만큼의 수행과 복력이 부족할 때는
시주의 은혜를 최소화 하고 오직 정진에만 힘써
능히 시은의 무거움과 시주의 은혜를 보답하고
삼륜이 청정하고 공적함을 얻으려 힘써야 하겠습니다.

자리와 지위가 사람을 만든다고
평소 수행에만 온 힘을 기울이다가
혹여 중벼슬 닭벼슬만도 못한 자리에 이르러
말 몇마디면 수천 수억의 국가 지원금을 타내고
이런 저런 불사를 한다고 애를 쓰는 경우도
요즘 세상에는 아예 없는 일도 아니지만
그에 따라 수행은 얇아지고
복력은 감하고 업장은 두터워지며
마장은 더욱 높아짐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를 따르는 불자들이 부처처럼 위한다 해도
그것이 학륵나존자와 오백마리 학같은 관계라면
따르는 숫자만큼이나 어깨가 무거워짐을 알아야 하고
입만 열면 청산유수처럼 설법을 잘하여
입에서 향기로운 연꽃이 피어 난다 하더라도
그것이 구경에 이르는 수행이 아닌 줄을 알면
스스로 입을 삼가고 뜻을 조섭하며
몸으로는 부처의 팔만세행과
3천위의를 갖출때까지는
조심하고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이 가는 어느 자리든
진실한 성품이 함께 하는 것이고
그 본 성품 자리를 깨닫고 보면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는 것이라
하는
마나라존자의 게송을 염송해봅니다.

비단 수행자들만의 문제가 아닐것입니다.
요즘처럼 벼라별 사람들이 있어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나오는 이들이나
누군가를 지도하는 책무를 지닌 이들이라면
자신들의 지혜와 복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먼저 깨달아 알고 나서
나가고 들어감을 결정하고
자기의 분수에 맞는 꿈을 키워야만
나라나 국민들 그리고 함께 하는 이들의 고통이
줄어 들 수 있음을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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