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원圓의 가치야말로

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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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1원圓의 가치야말로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화) 01 31, 2017 6:32 am

나무불 나무법 나무승
귀의삼보 하옵고

정초기도를 모시는 초사흩날 길이 험한데도 여러분의 불자님들이 가족들의 행복과 건강을 빌고자
부처님을 찾아뵙고 공양 올렸습니다.

정초기도비 삼재풀이비 년중 축원비 차량 안전운행 노제비 방생비 인등비 등
정초에 내시는 경비들이 적지 않은데도 다른 곳에서는 한푼이라도 아끼는 마음을
부처님 전에서는 아낌없이 풀어 놓으시니 나는 이 돈들이 다 내가 오랜 시간을 두고
갚아야 할 빚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불자님들은 부처님 전에 기도 올리는 순수한 마음이지만
결국 그 경비를 운용하여 절 살림을 하는 나는 자칫 한푼이라도 허투루 썼다가 그 결과로
나를 옭아매는 동아줄이 됨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쌀이 귀하던 시기에는 쌀 한톨을 아끼게 하느라 일미칠근 즉 쌀 한톨이 일곱근 나간다 며 중시하였지만
이제는 쌀보다는 돈이 중한 시대가 되고 보니 돈의 단위인 원 즉 일원의 가치가 쌀 일곱근 못지않은 커다란 가치로
환치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1원圓의 가치야말로 억만금과도 맞바꾸기 어려운 가치임을 알고 소중히 여기면
그는 억만금을 손에 쥐고도 헛되이 쓰지 않겠지만 1원의 진정한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돼지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돈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시대가 된것입니다.

잘만 쓸 줄 알면 억만금이 사람과 세상을 살리는 무가지보가 되지만
잘 쓸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마치 독약과도 같아 그 돈의 위세에 짓눌려 죽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니
돈이 많다고 좋아 할 일은 아닌 듯 보입니다.

연세가 드셔서 당신들이 일하여 얻은 수입보다는 자손들이 열심히 일하여 얻은 수입을
부모님께 드리고 그 경비 가운데 부처님 전에 아끼고 아낀 돈을 모아서 불전 올린다 생각하면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그 돈이라는 것은 몸을 얽어매어 부자유스럽게 하는 족쇄나 개가 코끼리 그물을 뒤집어 쓴 것과도 같은 것이니
원효대사는 발심수행장에서 여러가지 예를 들어서 수행자가 도를 닦는데는 등한히 하고 물질에 탐닉하는 것을 경계하셨습니다.

오늘은 발심수행장을 한번 읽어 보시겠습니다.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1)
분황사 사문 원효 지음
芬皇寺沙門 元曉述2)

1) 저본(底本)은『한국불교전서』제1책(동국대학교출판부, 1979)에 수록(p.841a1~c6)된『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이다. 이에 대한 교감본으로 갑본(甲本)은 1570년에 무위사(無爲寺)에서 개간(開刊)된『발심수행장』이고, 을본(乙本)은 1579년에 신흥사(新興寺)에서 각판(刻板)한『초발심자경문(初發心自警文)』이고, 병본(丙本)은 1635년에 운주(雲住) 용장사(龍藏寺)에서 간행한『초발심자경문』이고, 정본(丁本)은 1883년에서 해인사(海印寺)에서 간행한『초발심자경문』이다.『한국불교전서』에서는 정본(丁本)을 저본으로 하였다.

2) 저본(底本)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첨가되어 있다. “해동의 초조이며 모든 산을 유행하고 역섭한 화엄강사 원효화상은 경주 사람이다. 수나라 때 종남산 우두종 지현의 스승이며, 황룡사를 창건하였다. [시호는] 대성화정원효국사이다.”(韓1, p.841a4~6. 海東初祖, 遊歷諸山, 華嚴講師元曉和尙, 慶州人也. 隋時終南山牛頭宗智賢師, 刱黃龍寺. 大聖和靖元曉國師.)

무릇 모든 부처님들께서 적멸궁(寂滅宮)을 장엄하신 것은 많은 겁해(劫海) 동안 탐욕을 버리고 고행하심이며,
중생들이 화택문(火宅門)에 윤회(輪廻)하는 것은 한량없는 세월 동안 탐욕을 버리지 않은 때문이다.
夫諸佛諸佛, 莊嚴寂滅宮, 於多劫海, 捨欲苦行, 衆生衆生, 輪廻火宅門, 於無量世, 貪欲不捨.

[아무도] 막지 않는 천당에 가서 이르는 자가 적은 것은 삼독(三毒) 번뇌로 자기 집의 재물을 삼음이며,
[아무도] 유혹하지 않는 악도(惡道)에 가서 드는 자가 많은 것은 사사(四蛇)와 오욕(五欲)으로 망녕되이 마음에 보배를 삼기 때문이다.
無防天堂, 少往至者, 三毒煩惱, 爲自家財, 無誘惡道, 多往入者, 四蛇五欲, 爲妄心寶.

[어느] 사람이면 누구라도 산에 들아가 도(道)를 닦고자 하지 않으랴마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애욕에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 수풀에 돌아가 마음을 닦지는 못하더라도 자신의 힘을 따라서 선행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人誰不欲歸山修道, 而爲不進, 愛欲所纏. 然而不歸山藪修心, 隨自身力, 不捨善行.

자신의 즐거움을 능히 버리면 [다른 이가] 믿고 공경하기를 성인과 같이 하며, 어려운 행을 능히 행하면 [다른 이가] 존중하기를 부처님과 같이 할 것이다. 물질을 아끼고 탐함은 마(魔)의 권속이며, 자비로 보시(布施)함은 법왕의 아들이다.
自樂能捨, 信敬如聖, 難行能行, 尊重如佛. 慳貪於物, 是魔眷屬, 慈悲布施, 是法王子.

높은 산과 높은 바위는 지혜있는 사람이 거주할 곳이며, 푸른 소나무와 깊은 골짜기는 수행자가 살 곳이다.
주리면 나무 열매를 먹어서 그 주린 창자를 위로하고, 목마르면 흐르는 물을 마셔 그 목마른 정을 쉬어라.
高岳峩巖, 智人所居, 碧松深谷, 行者所棲. 飢餐木果, 慰其飢腸, 渴飮流水, 息其渴情.

맛있는 것을 먹여 사랑해 길러도 이 몸은 반드시 무너지고, 부드러운 것을 입고 지켜 보호하여도 목숨은 반드시 마침이 있다.
메아리 울리는 바위굴로 염불당을 삼고, 슬피 우는 기러기로 기쁜 마음의 벗을 삼아라.
喫甘愛養, 此身定壞, 著柔守護, 命必有終. 助響巖穴, 爲念佛堂, 哀鳴鴨鳥, 爲歡心友.

절하는 무릎이 얼음과 같더라도 불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으며, 굶주린 창자가 끊어질 것 같더라도 밥을 구하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홀연히 백년에 이르거늘 어찌 배우지 아니하며, 일생이 얼마라고 닦지 않고 방일하겠는가.
拜膝如氷, 無戀火心, 餓腸如切, 無求食念. 忽至百年, 云何不學, 一生幾何, 不修放逸.

마음 가운데 애욕을 여읨을 사문(沙門)이라 이름하고, 세속을 그리워하지 않음을 출가(出家)라고 이름한다.
행자가 그물에 걸리는 것 개가 코끼리 가죽을 입는 것이고, 도인이 연모해 그리워하는 것은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들어가는 것이다.
離心中愛, 是名沙門, 不戀世俗, 是名出家. 行者羅網, 狗被象皮, 道人戀懷, 蝟入鼠宮.

비록 재주와 지혜는 있으나 마을 집에 사는 자는 모든 부처님께서 이 사람에게 슬퍼하고 근심하는 마음을 내시고,
설사 도행은 없더라도 산실(山室)에 머무는 자는 많은 성인들이 이 사람에게 환희심을 내신다.
雖有才智, 居邑家者, 諸佛是人, 生悲憂心, 設無道行, 住山室者, 衆聖是人, 生歡喜心.

비록 재주와 학식이 있으나 계??戒行)이 없는 자는 보배 있는 곳으로 인도하나 일어나 가지 않는 것과 같고,
비록 부지런히 행함은 있으나 지혜가 없는 자는 동방으로 가고자 하나 서방을 향해 가는 것이다.
雖有才學, 無戒行者, 如寶所導, 而不起行, 雖有勤行, 無智慧者, 欲徃東方, 而向西行.

지혜가 있는 사람이 행하는 바는 쌀을 쪄서 밥을 짓는 것이며,
지혜가 없는 사람이 행하는 바는 모래를 쪄서 밥을 짓는 것이다.
모두들 밥을 먹어 주린 창자를 위로할 줄은 알지만, 법을 배워 어리석은 마음을 고칠 줄은 알지 못한다.
행과 지혜를 구비함은 수레의 두 바퀴와 같고, 자리와 이타는 새의 두 날개와 같다.
有智人所行, 蒸米作飯, 無智人所行, 蒸沙作飯. 共知喫食, 而慰飢腸, 不知學法, 而改癡心. 行智俱備, 如車二輪, 自利利他, 如鳥兩翼.

죽을 얻어 축원하되 그 뜻을 알지 못하면 또한 단월(檀越)에게 수치스럽지 않겠으며,
밥을 얻어 소리 높여 칭송하되 그 지취를 통달하지 못하면 또한 현성(賢聖)에게 부끄럽지 않겠는가.
得粥祝願, 不解其意, 亦不檀越, 應羞恥乎, 得食唱唄, 不達其趣, 亦不賢聖, 應慚愧乎.

사람은 꼬리 달린 벌레가 깨끗하고 더러움을 가리지 못하는 것을 미워하고,
성인은 사문이 깨끗하고 더러움을 가리지 못하는 것을 미워한다.
세간의 시끄러움을 버리고 허공을 타고 천상에 올라가는데는 계(戒)가 좋은 사다리가 된다.
그러므로 파계하고 다른 이의 복전(福田)이 되려함은 날개 부러진 새가 거북을 업고 허공을 나는 것과 같다.
人惡尾蟲, 不辨淨穢, 聖憎沙門, 不辨淨穢. 棄世間喧, 乘空天上, 戒爲善梯, 是故破戒, 爲他福田, 如折翼鳥, 負龜翔空.

자기 죄를 벗지 못하면 다른 이의 죄를 속바칠 수 없다. 그러니 어찌 계행이 없이 다른 이의 공급을 받겠는가.
수행이 없는 헛된 몸은 길러도 이익이 없고 무상(無常)한 뜬 목숨은 사랑해 아껴도 지키지 못한다.
自罪未脫, 他罪不贖. 然豈無戒行, 受他供給. 無行空身, 養無利益, 無常浮命, 愛惜不保.

용상(龍象)의 덕을 바라 능히 긴 괴로움을 참고, 사자좌(獅子座)를 기약하여 길이 욕락을 등져야 한다.
행자가 마음이 깨끗하면 모든 천신들이 함께 칭찬하고, 도인이 색(色)을 그리워하면 선신이 버리고 떠난다.
望龍象德, 能忍長苦, 期獅子座, 永背欲樂. 行者心淨, 諸天共讚, 道人戀色, 善神捨離.

사대는 홀연히 흩어져 보호해 오래 머물지 못하니, 오늘도 [벌써] 저녁인데 어쩌다보니 금새 아침이로다.
세간의 즐거움은 뒤의 괴로움이니 어찌 탐착할 것이며, 한 번 참음이 긴 즐거움이니 어찌 닦지 않겠는가.
도인의 탐욕(貪)은 수행자의 수치이고, 출가자의 부귀(富)는 군자의 웃음거리이다.
四大忽散, 不保久住, 今日夕矣, 頗行朝哉. 世樂後苦, 何貪着哉, 一忍長樂, 何不修哉. 道人貪是行者羞恥, 出家富是君子所笑.

막는 말이 다함이 없지만 탐착을 그치지 않으며, 다음[第二]이 다함이 없지만 애착을 끊지 않으며,
이 일이 한이 없지만 세상 일을 버리지 않으며, 저 꾀가 끝이 없지만 끊을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遮言不盡, 貪着不已, 第二無盡, 不斷愛着, 此事無限, 世事不捨, 彼謀無際, 絶心不起.

오늘[만이라는 말]이 다함이 없지만 악을 짓는 날이 많으며,
내일[부터라는 말]이 다함이 없지만 선을 짓는 날이 적으며,
금년[만이라는 말]이 다함이 없지만 한없이 번뇌하며,
내년[이라며 미루는 말]이 다함이 없지만 보리(깨달음)에 나아가지 않는다.
今日不盡, 造惡日多, 明日無盡, 作善日少, 今年不盡, 無限煩惱, 來年無盡, 不進菩提.

시간과 시간이 지나고 지나 밤낮이 빨리 지나가며, 날과 날이 지나고 지나서 빨리 한 달이 지나가며,
달과 달이 지나고 지나서 홀연히 내년이 이르고, 해와 해가 지나고 지나서 잠깐 동안에 죽는 문에 이른다.
時時移移, 速經日夜, 日日移移, 速經月晦, 月月移移, 忽來年至, 年年移移, 暫到死門.

부서진 수레는 가지 못하고 노인은 닦지 못한다. 누우면 게으름만 생기고 앉으면 어지러운 생각만 일어난다.
몇 생이나 닦지 않고 헛되이 밤낮을 보냈으며, 얼마나 사는 헛된 몸인데 일생을 닦지 않는가.
몸은 반드시 마침이 있으리니, 그 뒤의 몸은 어떻게 하겠는가. 급하지 않겠는가! 급하지 않겠는가!
破車不行, 老人不修. 臥生懈怠, 坐起亂識. 幾生不修, 虛過日夜, 幾活空身, 一生不修. 身必有終, 後身何乎. 莫速急乎! 莫速急乎!

ㅎㅎ
1원 십원 백원 천원의 원은 둥글 원자이니 돈은 둥근 마음을 쓰는 자의 몫이고 모나고 찢어지고 상처받은 자들의 몫이 아니라는 말이 아닐까요.
원만무결한 마음을 잘 쓰게 되면 저절로 세상이 바른 궤도로 돌아가게 되리니 이 원圓이라는 글자는 커다란 우주에 든 사람을 뜻한다 보아도 될까요.
돈을 자유자재로 굴리는 사람은 우주에서 나올 수 있는 역량있는 사람이요 돈에 노예가 되고 만 사람은 돈 속에 갇혀서 돈돈돈 하다가 돌아가게 되니
세상에 나왔다가 기왕에 한번 가는 인생 돈에 굴림을 당할게 아니라 우주를 굴리고 인생을 굴리는 멋진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습니다.

재벌과 재벌 2세 3세들 모습에서 재물에 눌려 질식해 가는 사람들 보는 것 같으니 견리사의 라는 말처럼 이욕 앞에서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입니다.

다시 돌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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