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내가 바로 부처로구나

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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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아하 내가 바로 부처로구나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수) 01 18, 2017 8:09 am

아하 내가 바로 부처로구나

큰스님으로 알려진 어느 스님이
구름같이 운집한 대중들을 모아 놓고
마음이 부처다 평상심이 부처다 라고
열심히 설법하실 때의 일입니다.

그런데 지난 밤이 고단하였던지
제일 앞자리에 앉은 젊은이가
졸기 시작하더니 조금 지나자
코를 쌕쌕 골며 영 분위기를 망칩니다.

스님이 졸고 있는 젊은이 옆에
반듯하게 앉아 법문을 듣고 있던 노보살에게
보살님 그 사람 좀 깨우시면 안될까요
하고 주문하였더랍니다.

그러자 노보살님은
금방 젊은이를 깨우기보다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혼잣말을 하는데
다 알아들을만큼 커다란 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재우기는 스님이 재워놓고
왜 깨우는 것은 날보고 깨우라 하시나.

그 말에 한바탕 대중들은 큰 소리로
박장대소 하면서 즐거워 하였더랍니다.

보살님 대답이 미묘법문입니다.

스님의 법문이 노보살님 듣기에는 좋으나
고되게 일하여 피로가 쌓인 젊은이에게는
별무소용이었던 듯 법문을 들으려던 생각은
십만팔천리로 달아나고 천근 만근 무거워진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젊은이는
염치불구하고 자리가 어떤 자린지조차 생각않고
몸이 이끄는 힘에 자기를 맡겨둔 것이지요.

이 눈꺼풀이 얼마나 수행을 방해하는지
그것을 가리켜 절에서는 수마睡魔라고 합니다.

잠을 자게 하는 마구니와 같다는 말로
정신일도하여 수행 정진하는 수행자에게 있어서
제일 큰 마장의 하나가 바로 잠이라는 것이니
그리 말한 것이겠지요.

오죽하면 달마대사도 수마를 이겨 내려고
자기 윗눈꺼풀을 잘라내어 마당에 던졌다 합니다.

땅에 떨어 진 눈꺼풀이 대지에 스며들고
그 자리에서 작은 싹이 하나 올라 왔는데
그것이 바로 차나무가 되었다 하지요.

이 차나무 이파리를 달여 먹으면
각성효과가 뛰어나고 잠을 쫒으며
강심이뇨작용이 많아져서 차만 마시면
해우소로 급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몸에 수분의 흐름을 촉진한다고 보면
건강에 좋은 순기능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합니다.

학생회며 아가들이며 여러 곳 법회를 보지만
정말로 법문을 하는 제일 앞자리에 앉은 학생이
졸기 시작을 하면 옆에 친구가 흔들어 깨워도
잠깐 정신을 차리는 듯 하다가 다시 졸기 일쑤입니다.

그만큼 법회에 참석한 대중들의 마음에
귀에 쏙 드는 법문을 하지 못한다는 증거이지요.

그러니 귀에 안들어 오는 소리를 듣자면
몸은 잠으로 빠져들게 마련이고 결국은
스님 법문이 사람을 졸게 만들었으면서도
조는 사람을 깨우는데는 노보살에게 부탁을 하니
노보살님의 대답이 참으로 선재 선재입니다.

재우기는 스님이 재우고
깨우는 것은 왜 나를 시켜요.

법문이 재미있고 귀에 쏙쏙 들어오면
잠이 들려다가도 저절로 귀가 열리는 법이니
대중을 탓할 게 아니라 자기 법문의 내용이
대중의 수준에 미치지 못함을 탓할 밖에요.

그래서 부처님은 대기설법
혹은 수기설법 하라 는 등의 말씀으로
청법 대중의 근기에 맞게 설법하라 하십니다.

하지만 그게 여간 어려운게 아니니 문제입니다.

반대로 설법하는 소리를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자장가로 듣는다면
그도 역시 좋은 설법이라 할까요.

부처님 제자로 아나율이 있었습니다.

어느 때 법문을 듣다가 조는 모습을 보고
부처님이 아나율아 너는 왜 출가를 하였느냐
하고 물으니
예 부처님 열반을 증득하여
생사해탈을 이루고자 출가하였습니다 답합니다.

그러면 법문을 듣는 자리에 조는 것이
해탈 열반의 길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하고 간곡하게 경책하시는 부처님 가르침에
아나율은 그날로 나는 앞으로 절대
눈을 감고 잠을 자지 않겠다 굳게 다짐합니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도무지 잠을 안자고 눈을 감지 않으니
눈이 짓물러서 병이 나고
결국은 실명 위기에 이르게 됩니다.

치료를 받으려고도 않고
부처님의 잠을 좀 자도록 해라
하는 당부의 말도 듣지 않으며
열반은 정진을 먹이로 삼는다 하셨기에
저는 이 정진을 놓을 수 없습니다 하고
정진하다 마침내 두 눈을 실명하게 됩니다.

두 눈은 실명하였어도 수행의 결과는 있어서
하늘의 눈을 가지고 온 하늘과 세계를 두루 보는
능력을 얻어서 천안제일 아나율이라 불립니다.

어느 날 옷을 꿰매려 바늘귀를 꿰는데
영 실이 바늘 구멍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누가 나를 위해 바늘 귀를 꿰어 줄
복을 닦을 분이 없는가 하고 주변에 말하자
선뜻 바늘과 실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 실을 꿰었네 하고 돌려주는 소리가
부처님의 말씀임을 안 아나율은 깜짝 놀라서
아니 부처님은 위없는 복전이신데
무슨 복을 더 지으시려 이렇게 하십니까 하니
부처님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중생을 위하여 복을 짓는다 하셨다 합니다.

글을 적으면서 부처님이 아나율의
앞을 보지 못하는 괴로움을 아시고
옆에서 늘 그를 지켜 보다가 도와 주셨을까
의문을 갖습니다.

아마 아니었을 것입니다.

부처님의 눈은
당신의 모든 제자를 낱낱이 살피시고
그들의 공부를 살피시며 수행에 장애가 없도록
도와 주시는 천백억화신 가운데 한분으로
아나율의 바늘을 꿰어 주셨을 것입니다.

동시간대에 부처님은 또 다른 제자나
중생들이 겪는 아픔의 현장에서
자비행을 같이 하셨을 것이란 말입니다.

그런 분이 부처님이십니다.

행복과 기쁨의 자리에도 부처님이 계시지만
고통과 불행의 자리에도 부처님은 항상 하심을 믿고
우리는 염불 염법 염승 하는 자세로
날마다 좋은 날 되도록 노력해 가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는 부처님을 청하여
도움의 손길을 얻는 그런 불자가 되면 좋겠습니다.

또 도움을 구하는 마음에서 나아가
내 주변에 도움의 손길을 청하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는 부처님의 천백억 화신이 되어야
불자로서 올바른 삶을 살고 있다 칭찬받을 것입니다.

부처가 누구인가요.
바로 이 글을 읽으시면서
아하 내가 바로 부처로구나
깨닫고 미소짓는 그대가 부처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부처로 존중하고
하는 일마다 부처님 일로 생각하며
머무는 자리마다 부처님 도량으로 생각하고
앉아 있는 곳마다 보리도량으로 생각하면
처처에 부처님이요 일마다 불공이 됩니다.

이 얼마나 쉽고도 간결한 말인가요.
세수하다 코 만지기보다 쉽다는 불법 공부에
나는 안돼 나는 못해 나는 어리석어 하는
부정적인 생각만 내려 놓으면
천년 어둠도 등불 하나로 밝혀지는 것처럼
우리들 마음에 무명도 한순간에 밝아집니다.

불경에만 불법이 있고
절이나 선방에만 수행이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삶의 현장 곳곳마다
세계일화의 꽃이 송이송이 피어납니다.

다시 돌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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