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인연

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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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귀한 인연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토) 12 10, 2016 9:09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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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도 갈수 없는 그리운 금강산엔
53불의 유래가 있는 유점사가 있습니다

위 사진은 유점사에 모셔졌던
53분의 부처님 가운데 일부로 보이는 모습입니다.

지금도 저 모습 그대로 친견할 수 있다면
아마도 큰 영광이요 환희일것입니다.

얼마전 남녁의 사찰에 있던 수백년은 되어 보이는
기이한 형태의 괴목나무 뿌리 작품을 하나 모셔다가
몇분의 부처님을 모시면서 유점사 부처님을 생각하였습니다.

전체 높이가 2미터는 되어 보이고
좌우 폭으로도 3미터 가량되어 보이는 나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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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_0069.jpg (378.31 KiB) 26 번째 조회

그래서 도량에 모시고 나서 작은 단 위에
불상을 모셔 놓으니 저와같은 모양이 되었습니다.

유점사 53불 이야기를 한번 옮겨 오겠습니다.

*전설1
금강산 유점사 종을 타고 온 53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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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2_007유점사.jpg (69.71 KiB) 26 번째 조회

유점사에는 인도에서 온 53기의
불상과 한 개의 종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석가모니가 살았을 때
인도에 9억호의 집이 있었다.

그 중 3억호의 사람들은 부처를 만나 설교를 들었고,
3억호의 사람들은 보지는 못했지만 듣기는 했으며,
나머지 3억호의 사람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후 그의 수제자인 문수보살이
여러 제자들과 함께 불교 교리를 설교하였다.

그러자 마지막 3억호의 사람들이
부처님을 한 번 모습만이라도 보았으면 하고
한탄하여 마지 않았다.

문수는 "너희들이 만약 부처님을 믿는다면
그 형상을 만들고 공양을 드려야 할 것"이라 하였다.

그러자 3억호의 사람들은 불상 하나씩을 만드니,
어떤 것은 크기가 한 자 만하였고,
어떤 것은 몇 치밖에 안 되었다.

그리고 난 후 한 개의 종을 만들었다.
여러 불상들 가운데
얼굴과 몸 모양이 제대로 갖추어진 53개의 불상을
종 안에 넣고,
이 같은 작업을 하게 된 경위를 써 넣었다.

마지막으로 뚜껑을 덮고 바다에 띄우면서 축원하기를
"나의 스승인 석가모니의 53상을 바다에 띄우노라.
인연이 있는 나라에 도착하게 되면
나도 뒤따라가서 교리를 설파하리라"하였더니
신령스런 용이 나타나서 종을 등에 업고 떠나갔다.

이때가 중국의 주나라 목왕 53년 이라 전한다.
53불을 태운 배는 바다를 흘러
인도반도 남쪽에 위치해 있는 월지국에
도착하게 되었다.

월지국의 혁치왕은
그 종에 새겨진 글을 보고 기쁜 나머지
큰 법당을 짓고 53불을 모셨다.

그러나 갑자기 대궐에 화재가 나서 법당이 다 타버렸다.
왕이 다시 법당을 지으려 하자
그날 밤 꿈에 53불이 나타나서
'여기 머무르지 않겠으니 붙잡으려들지 말라'
하는 게 아닌가.

왕이 놀라 깨어나서
53불을 종에 넣고 바다에 띄우면서 맹세하기를
"좋은 인연이 있는 나라에 갈 것이니
그 때 나는 권속 수천 명을 데리고 가서
불법을 지키는 착한 신이 되어 늘 부처님을 옹호하리라" 하였다.

그는 은으로 된 솥뚜껑 하나를 더 만들고는
자신의 소원을 써서 바다에 띄웠다.
(유점사 월지왕 사당은 그래서 생긴 것이다.)

종은 큰 바다에서 동방을 향해 흘러가며 표류하다가
인도를 떠난 지 500년 만에 금강산 동쪽 해안인
고성군 안창면 포구에 도착하였다.

그때가 지금으로부터 1900여 년 전인
중국 한나라 평제 원치 4년이요,
신라 제2대 남해왕 원년이었다고 전한다.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이상하게 여겨 관가에 가서 알렸다.
고을 원이었던 노춘이 이 말을 듣고 뛰어나가 보니
부처님이 머물렀던 자리는 뚜렷한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뭇가지들과 풀들이
모두 금강산 쪽으로 쏠려 있었다.

노춘이 그 방향으로 30리쯤 가니
풀밭에 종을 내리고 쉰 자리가 있었다.

지금 '게방'(쉰방)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길가에 있는 돌에 종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고 한다.

노춘이 다시 천여 걸음을 더 가니
문수보살이 스님 모양을 하고서 부처님들이 간 곳을 대주었다.

또 천 걸음을 더 가니 앞에 높은 고개가 가로막았다.

고갯마루에 채 오르기 전에
한 비구니가 돌에 걸터앉아 있는데
부처님들을 보았느냐고 물으니 서쪽을 가리키면서
막 떠나갔다고 하였다.

그녀도 역시 문수보살의 변신이었다.
지금 그 바위를 '니유바위' 혹은 '니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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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춘이 더 앞으로 가노라니
높은 산봉우리로 한 가닥 길이 빙빙 돌았다.

문득 흰 개 한마리가 꼬리를 저으면서 나타나더니
노춘 일행을 인도하였다.

지금의 구령(개잔령)이 이곳이다.

고개를 지나서 목이 몹시 말라
땅을 파고 샘물을 찾아내니 지금의 노춘 우물이다.

다시 6백 걸음쯤 가니 개는 없어지고 노루가 나타났다.
또 4백 걸음쯤 가니 노루도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들이 험한 산길을 가느라
잠깐 둘러 앉아 쉬고 있는데 갑자기 종소리가 들려왔다.

노루가 나타난 곳을 노루목이라 하고
종소리를 듣던 고개를 '환희령'이라 한다.

작은 고개를 하나 더 넘고 개울을 따라 들어가니
소나무 잣나무가 빽빽하게 들어 섰는데,
한 가운데 큰 연못이 있고
그 북쪽에 큰 느릅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이 나무에다 종을 걸어두고
부처님들은 못 가에 줄지어 서 있었는데,
이상한 향기가 자욱하고 상서로운 구름이 떠돌았다.

노춘과 관속들은 너무나 기뻐서
부처님들을 바라보며 끝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노춘은 그 길로 돌아가서 국왕에게 아뢰니
왕도 놀라고 이상히 여겨 직접 그곳으로 갔고
스스로 불교 신자가 되었으며,
그 연못 일대를 메우고 다듬어 53불을 모시는 절을 세웠다.
느릅나무 가지에 종을 걸어두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유점사'라고 한다.

그런데 그때 그 연못 속에는
심술 사나운 아홉 마리의 용이 살고 있었는데
구룡은 53불이 들어오자 자리를 양보하려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서로 재주를 부려 지는 편이 떠나기로 하였다.

먼저 용이 조화를 부려
뇌성벽력을 일으키고 폭우가 쏟아지게 하였는데
부처님들은 여전히 느릅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그 다음 부처님이 불'火(화)'자를 써서
못에 넣어 물이 끓게 하니 구룡이 견디다 못하여
서쪽 효운동 구룡소로 옮겨 가서 살았다.

부처님이 다시 명하여
구룡은 오늘의 구룡연으로 옮겨갔다.

효운동에 있는 구룡소의 돌이 우묵우묵 패어 있어
크고 작은 독을 물 속에 넣은 것 같기도 하고
돌확을 깊이 파놓은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을 구룡이 살던 자리라고도 하고
구룡이 옮겨갈 때 돌을 뚫고 나간 자리라고도 한다.

이 곳에는 본래 우물도 샘도 없어서
스님들이 날마다 쓰는 물을 우물에서 길어와야 했는데
매우 힘이 들었다.

어느 날 수많은 까마귀들이
절 동북쪽 모서리에 모여서 까욱까욱 떠들면서
땅을 쪼아대니 샘물이 터져 나왔다.
지금 '오탁정'이라 불리우는 우물이다.

뒷날 스님 한 사람이
53불이 오랫동안 향불에 그을려
시커멓게 된 것을 딱하게 여기고
금빛 바탕을 드러내기 위하여
잿물을 끓여서 부처님들을 씻었더니,
갑자기 우뢰가 울고 폭우가 쏟아지면서
오색구름이 충만된 가운데
53불은 모두 들보 위에 날아올라가 줄지어 섰다.

그 중 3분의 부처님은 공중 높이 날아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스님은 갑작스런 일에 너무나 얼이 나가서
정신병자가 되어 돌아가고 말았다.

그후 연충이라는 스님이
모자라는 부처님들을 보충하려고 부처님 세분을 주조하였는데,
그전부터 있던 부처님들이 모두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부처님들은 밤중에 꿈에 나타나
다른 불상을 우리들 사이에 두지 말라고 일렀다.
훗날 사라진 세분 부처님의 행방을 알게 되었다.

두분은 구연동(유점사 뒷골)의
만 길이나 되는 절벽에 올라가 있었는데,
사람의 힘으로 올라갈 만한 곳에 있던 부처님은
본자리에 옮겨 모셔다 두었으나
올라가지 못하는 곳에 있던 부처님은
그냥 두는 수 밖에 없었다.

부처님 한분은 수정사 뒤 절벽에 있었는데,
스님들이 사다리 몇개를 이어 가지고
올라가려다가 그만두었다고 한다.
이밖에 유점사 종이 영험하다는 얘기도 여러가지가 있다.
큰 가뭄이 들 때마다 이 종을 물로 씻으면 비가 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종에서 진액이 나오면
나라에 재앙이 닥치는 등
상서롭지 않은 일이 생겼다고 한다.

한때 산불이 나서
그 불길이 유점사 절까지 번져 왔는데
종에다 물을 끼얹었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불길이 꺼졌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다시 돌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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