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사 표충원내 義僧將 騎虛堂 靈圭大師紀蹟碑 전문

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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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갑사 표충원내 義僧將 騎虛堂 靈圭大師紀蹟碑 전문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일) 11 20, 2016 12:33 pm

갑사 표충원에 모셔진 영규대사 비문을
심원이라는 분의 카페에서 찾아 냈기에
당해 사찰이나 대사를 사모하는 개인들이
연구 자료로 삼으시라 이렇게 알립니다.

영규대사와 서산대사 사명대사
처영대사 의엄대사 각성대사등
임란에 처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대비구세의 마음과 사신구법하는 자세로
목탁과 요령 경전과 선장을 내려놓고
몸을 던져 왜군과 싸우신 스님들을 기리는
의승군의 날이 하루 속히 제정되어
여법하게 모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발원합니다.

1950년에 글을 지으신 위당 정인보 선생과
73년에 이르러서야 비문을 세우게 될 때 수고하신
영규대사 현창회 회원들과 참여자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은 비문 전문을 번역한 내용입니다.

義僧將 騎虛堂大師紀蹟碑*의승장 기허당 영규대사기적비

조선 宣祖 임진년(1592) 왜구의 난에 僧徒로 의병을 일으킨 분은
關東의 惟政,
關西의 義巖,
湖南의 處英인데,
湖西에서는 大師다.

대사의 이름은 靈圭요, 호는 騎虛니,
朴氏의 아들로 公州 板峙에서 태어나, 鷄龍山에 들어가 淸虛에게 法을 받았다.
뒤에 瑞鳳寺ㆍ落迦寺 등 여러 절에 살았는데 가장 오래기는 岬寺에서였다.

대사가 비록 청허의 문도였지만, 겉으로는 어리무던하여 불법을 아는 척 나서지 않고, 늘 여러 사람을 따라 힘든 일을 하고, 산 속에서 섶을 지곤 하니, 남들은 奇正(병법의 權道와 正道)의 대략을 그가 아는지도 몰랐다. 유독 茂環만이 끔찍하게 여겼다.

왜구의 소식이 갓 전해지자 대사는 여러 스님들을 모아 놓고, 寺門에 술잔을 돌리며 義僧을 일으켜 적을 쳐부수기로 약속했다. 약속이 정해지자, 거느리고 막 떠나려 할 때 淸州가 두려빼져서 바로 防禦使 李沃과 함께 갔는데 싸우자마자 이옥의 군은 무너졌다.

대사 홀로 부하를 거느리고 온종일 치고 싸워, 맞붙은 자가 모두 위력에 눌려 굴복하였다. 文烈公 趙憲이 뒤따라오자 힘을 모아 청주 서문을 쳤는데, 대사가 먼저 문루로 올라가 마침내 청주를 되찾았다.

이 싸움에서 무환은 전사하니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자 通政僉知中樞에 除授되고 緞衣가 내려졌으며, 대사는 금산싸움에서 위용을 세웠다.

처음 청주가 이미 수복되자 대사는 문렬공과 빨리 북으로 올라가기를 의논하였으나, 금산이 또 두려빼어졌다는 소식을 듣자 문렬공은 먼저 금산으로 달려가려 하고, 대사는 북으로 가려 하는 것을 문렬공이 우겼다. 8월 열이레 갑진 일에 문렬공이 앞장섰다. 금산까지 10리를 못 미쳐 멎으니 대사는 10리를 뒤미처 갔다. 문렬공이 내일로 적을 쳐부수기로 기약했는데, 마침 비가 내렸다.

대사가 문렬공에게 壘舍를 세우기를 재촉하며

“준비 없이 어떻게 적을 맞서겠는가?”
하자, 문렬공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눈물을 흘리며
“이 오랑캐는 내가 당해낼 적이 아니다. 이제 변변치 않은 군대로 급히 싸우려는 것은 다만 충의심이 복받쳐서고 사기의 날쌤을 틈탈 뿐이다.”
하였다.

을사일(열여드레) 먼동이 미쳐 트기 전 왜가 많이 거느리고 나타나, 군대가 한 데 서 있는 것을 보자, 바로 육박해 왔다. 문렬공이 크게 부르짖으며 적을 죽이는데 칼이 맞부딪치매, 살상을 당해낼 수 없는지라 적이 약간 물러나자, 군대가 대사의 누사로 나아가니, 적이 뒤쫓아와 미처 가다듬지 못한 우리를 덮친지라 패하고, 무기도 다 없어졌건만, 오히려 맨 손으로 앞을 다투어 반걸음도 물러서지 않으니, 왜구가 문렬공을 포위하였으므로, 대사가 돌격해 들어가 문렬공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

“趙義將은 돌아갔습니다. 왜 피하지 않습니까?”
하고 외치는 자가 있었다.

대사는 말했다.
“죽으면 함께 죽을 뿐이다”
하고 죽기 살기로 해가 지도록 싸웠다. 상처가 깊어 땅에 쓰러지니 모두들 대사가 죽은 줄로 알았다.

한참 만에 되살아나니 창자가 상처에서 삐져나오는 것을 한 손으로 누르며, 한 손으로는 무기를 들고 일어나 공주로 나아가 다시 의병을 일으키려 하였는데, 60리를 가서 草浦川을 건너는데, 내가 불어 배까지 차니, 아픔은 거의 견딜 수가 없었건만, 그래도 가 佛堂里에 이르러 숨이 끊어졌다.

普는 일찍부터 대사의 의를 사모하여 국사와 야록(야사)을 상고하니, 모두 대사가 문렬공과 함께 금산 지경 너머에서 돌아갔다고 했다. 그러나 공주 사람들은 이제껏 대사가 창자를 누르고 공주로 나아갔다 한다. 草浦 佛堂里의 지점을 가리키며 한숨지으며, 柳山(유씨네 선산)에 대사의 무덤이 있으니 불당리와 가깝다고 한다.

아! 대개 그것이 사실이다. 대사와 문렬공은 똑같이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것이 되니 義는 한가지다. 그러나 문열공은 선비라 高節을 힘쓰고 명분을 세웠으니, 그러므로 한 번 죽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사는 재덕이 뛰어난 사람이라 용감하고 사납기 다시없는지라, 적을 쳐 죽이기 전에 죽는 것이 비록 의이기는 하나, 종시 뜻에 차지 않으므로, 진실로 숨 한 번 쉴 동안이라도 드틸 수만 있다면 반드시 그 뜻을 이루고자 하였다. 숨이 이미 끊어졌는데도, 대개 창자가 삐져나오는데도 누르고 갔으니, 대사 역시 그 숨이 드틸 수 있는 동안이라야 순간임을 알았을 것이고, 아픔은 죽음보다 더 했으련만, 이 한 순간이라도 차라리 아픔을 참았지, 그 차지 못한 뜻을 차마 저버릴 수는 없었으니, 이것이 바로 대사의 용맹이오, 또한 대사의 義다.

전해오기를 대사가 처음 의병을 일으켰을 때, 한 사람이 큰 낫을 들었는데 호령이 몹시 엄하고도 위엄이 있어 거스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유정ㆍ처영 여러분이 군사를 통솔함에 대개 그러하였다 한다. 불가의 법을 더듬건대 죽이지 않음으로 가르침을 삼는데, 이를테면 阿育王이 여러 나라를 정벌하여 불교를 넓혔으니 바로 불법을 지키는 올바름이지만 불법이 그런 것은 아니다.

中國(震怛)은 고승은 鄧雲峰 말고는 불법으로 군을 도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유독 이 땅 청허의 문도만은 높은 제자, 명망 있는 고승이 국난에 달려가, 비록 구적과 싸우기 한창 심한 때를 만나더라도, 온 천하와 더불어 같이 분개하였으니, 천천히 그 까닭을 살펴보건대 진실로 또한 내림[由來]이 있다.

대개 신라의 國仙ㆍ고구려의 皀衣仙人은 모두 환웅 임금의 끼치신 가르침의 얼림으로, 사납고 강건함을 높이고, 志節을 드날려, 나라에 일이 생기면 떼 지어 이를 위해 죽었으니 역사에 나타난 것을 오히려 상고할 수 있어 유교와는 다른 바다. 선비(儒者)는 혹 이들을 중이라고 하니, 崔都統이 이른바 唐 太宗이 쳐들어 왔을 때 본국에서는 僧軍 2만을 파견하여 이를 쳐부수었다는 것이 바로 조의선인이다.

國敎가 차츰 바뀜에 미쳐, 고려 때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仙郞을 세워 무리를 모으니, 중과 민간인이 함께 받들더니 왕조가 한양으로 바뀜에 끊어졌으나 그 남은 진액과 나머지 윤기가 불교에 배이고 젖어, 중은 웅건ㆍ용맹을 귀히 여겨 제 힘으로 섰지 남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서로 한데 얼리어 민족을 비호였던 것이다.

청허는 불교의 고승 가운데 선종이나 그 門徒가 씩씩하고도 의로움은 왜 그런지 모르게 그런 것인즉, 그 風敎의 내림은 멀다. 대사는 다시없이 뛰어나 佛門에서 스스로 분발하여 의병을 일으켰고, 뜻이 그 한 몸으로 엄청난 왜구를 이기려 하였는데, 상처를 입어 죽게 되니 그 의가 이미 극진하다.

그러나 희미하게나마 정신이 있는 것 같음에 미쳐서는 그 죽는 것만으로는 미진하다 하여, 다시금 제 힘으로 그 다하기를 구한 뒤에야 그쳤으니, 대사는 천지에 빛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국풍의 오랜 숭상을 드러내며, 또한 불교의 진수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예전에 조정에서는 나랏일에 죽은 이를 기리고 높여서 文烈公을 모시는 곳, 이를테면 從容祠ㆍ表忠祠 같은 데는 모두 대사를 配享아였다. 갑사에 사당이 있고, 文巖에는 㫌閭가 있다. 그러나 대사의 위대한 功業에 대해서는 그 갚음(보답)이 오히려 미미하였다.

근래 난리를 겪은 이래로 백성들이 옛 자취를 추모하고, 광복이 되자 민중의 추모함이 더욱 용솟음쳐서 忠南 産業局長 鄭樂勳이 先烈을 드날리게 하고 밝히는 일을 자기 할 일로 알았다.

대사의 의는 마땅히 영원히 밝혀야 한다 하면서, 公州郡守 賈廷魯와 함께 돌을 베어 글을 새겨 읍 북산 위에 세우기를 도모하기에 普가 공경스럽게 붓을 잡아서 그 일을 도왔다. 올(1950)부터 두 해가 지나면 대사가 나라를 위해 돌아간 임진년(1592)이니, 여섯 周甲이다.

銘은 다음과 같다.

國於天地 천지간에 나라가 있다 하면
立以不依 자립할지언정 남에게 기대지는 않는 법
旁薄之精 서려 있는 정기는
有崛無隨 불끈 솟을지언정 붙좇진 않는다네.

斯盧亢亢 신라는 굳세었고
浮屠高揭 스님은 우뚝 높았네.
海東自宗 우리나라는 스스로 宗主國이 되었지
羞爲人世 남을 이어받기 부끄러워하였네.

稽昔仙風 그 옛날 국선의 風敎를 상고하건대
爲孝爲忠 효도하고 충성함이라.
中遏不流 중간에 막혀 전해지지 않았으나
空門于鍾 佛門에 모였었다네.

師奮山巖 대사가 산 바위에서 분개하자
神勇薄雲 신비한 용기는 구름까지 치달았네.
有衆三百 그 무리는 삼백 명이었으나
氣呑倭人 그 기개는 왜인을 삼킬 듯했네.

淸原淪沒 청주가 두려빼어졌을 때
我武方始 우리의 威武는 바야흐로 비롯되었네.
虓虎下搏 범처럼 으르렁대며 내리치니
羣醜委胔 뭇 적들 썩은 살덩이처럼 나가둥그러졌네.

冕旒北狩 선조임금 북으로 피난감에
勤王其亟 임금께 충성 다함이 다급하기에
蓐食秣馬 새벽밥 뜨고 말 먹이고
偕我同義 “같은 의로 나와 함께.”

錦山之役 금산 싸움은
非師始期 대사의 애당초 기약 아니었으나
文烈趨之 문렬공이 가는 바람에
師則與之 대사는 같이 갔던 것.

謂壘于高 높은 데 壘臺가 있어야 하는데
谷而無蔽 골짜기에다 가린 것도 없어서
東方未辨 동녘이 밝기도 전에
寇來無際 왜구는 한없이 쳐들어 왔네.

寇有憑陵 왜구는 날뛰었건만
我有毅果 우리는 의지가 굳고 과감하였네.
緇白固結 대사와 문렬공이 굳게 뭉쳐
夷視水火 물불을 가리지 않았네.

文烈曰咨 문렬공이 말하기를 “아!
力豈敵彼 힘으로야 어찌 저들을 맞서랴
忠驅義馳 충성으로 달리고 의로 치달아
決于一死 한 번 죽기로 마음 다질 뿐.”

世有死戰 세상에 죽기 기를 쓰는 싸움이 있다지만
孰如玆決 어느 싸움이 이처럼 결연하였던가?

趨死若歸 죽으러 가기를 집으로 돌아가듯
苟生若疾 구차히 사는 것을 질병같이 여겼다네.

山河爲凜 산하도 부르르 떨고
草木爲肅 초목도 오그라들 지경.
至今猶勁 지금도 오히려 굳세거늘
矧伊在目 더구나 눈앞에 보고서리오?

方圍孔急 포위가 한창 몹시 다급한 때
一角忽崩 한 모퉁이가 갑자기 무너지더니
師號而入 대사가 외치며 쳐들어가
靡曲不經 샅샅이 안 거치는 데 없어라.

痛此忠肝 비통한 이 충성된 마음
瀉血于何 그 피를 어디에 쏟을꼬!
手劍閃閃 손에 든 칼 번쩍번쩍
艾賊如麻 적을 베기 삼대나 갈기듯.
艾之芟之 벨수록 갈길수록
寇愈加之 왜구는 더 불어만 나고
陰雨滿山 궂은비는 온 산에
日又斜之 해까지 설핏해라.

平原之忽 平原에서 갑자기
剡若上征 위로 치듯 하며 번쩍하더니
乍還其省 제정신으로 돌아오니
腸出創橫 가로 터진 상처에서 창자가 쏟아지네.

猛志如火 사나운 뜻은 불같아서
寇在責巨 왜구가 있는 한 내 책임은 막중한데
豈以暝目 어찌 차마 눈을 감고
謂盡義擧 의거를 다했다 할 수 있으랴?

左按其腸 왼손으론 창자를 누르고
右把其矛 바른손엔 창을 잡고
起仆數三 일어났단 쓰러지기 두서너 차례.
卒度川皐 마침내 내와 언덕을 건너 숨이 끊겼네.

一縷苟存 실낱같은 목숨이나마 진실로 붙어만 있다면
此心不已 이 마음 말래야 말 수 없으니
志雖未展 비록 그 뜻 펴진 못했다지만
不已長在 말래야 말 수 없는 이 마음은 영원하리.

軀命非我 이 몸과 목숨도 내 것 아니거니
榮名何物 명예란 무엇이란 말인가?
惟國惟民 오직 나라와 겨레뿐
卽聖卽佛 이게 바로 성인이며 부처이니라.

乃昭民訓 이로써 백성의 교훈을 밝히고
乃表國魂 이로써 나라의 얼을 드러냈느니라.
人去誠留 사람은 갔으나 그 정성 남아
豸契貐乃奔 몹쓸 짐승은 이제 달아났네.

仇亦多類 원수도 가지가지지만
此仇無二 이런 원수는 세상에 둘도 없는 것들.
胡俾湥爪 어찌 그 앙칼진 손톱으로
再簭吾地 두 번이나 우리 땅을 할퀴게 했누?

爲蟲爲蟻 벌레나 개미처럼 천덕꾸러기 된 채
霜星四十 사십 년 세월
忍以食息 어이 차마 목에 넘기고 숨이 붙어
延于迫脅 을러대고 윽박지르는 중에 연명했던고!

旻天矜憐 하늘이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어
禮樂復起 문물제도가 다시 일어나고
田畝閭閻 논밭이며 민간은
何全何毁 어디가 성하고 어디가 무너졌나?

旣歷其哀 이미 그 슬픔 겪고 나니
恫念往烈 지난 先烈 서럽게도 못 잊혀라.
龍蛇之慬 임진년 용감함
愾慕尤切 분개와 사모 더욱 간절해라

惟師卓特 아! 대사는 뛰어나게 영특하니
日月星辰 해와 달과 별들 같아라.
薦詞穹石 큰 돌에 글을 바치니
終古如新 영원토록 새로우리라.

※ 정인보 지음/ 정양완 옮김, 『薝園文錄下』(태학사, 2006), 238~248쪽에서 인용.
명백한 오자는 수정하고, 비문과 비교하여 다른 것은 각주에서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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