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가불자, 왜 승가에 편입되려 하나,'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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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재가불자, 왜 승가에 편입되려 하나,'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목) 02 09, 2017 9:31 am

한국 재가불자, 왜 승가에 편입되려 하나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 / 법보신문 기고문서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 기고 전문
한국 재가불자들의 신심과 신행활동의 적극성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어릴 적부터 불공 가는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가본 경험이 있거나, 소풍과 여행으로 경치 좋은 명승지에 자리 잡은 사찰에 방문한 경험을 가진 상당수의 한국인은 자연스럽게 불자로 자처하게 되는 단계에 이르곤 한다.

재가불자라는 의식을 하는 정도가 되면 5계, 8계, 10선계, 보살계 등 수계를 하게 되고, ‘○○거사’ ‘△△보살’이라는 법명을 가지고 법회 등 각종 활동을 위해 사찰을 찾는다.

삼보에 귀의하고 불보살을 신앙하는 불자들, 불공과 기도를 하는 불자들, 사찰순례를 하고 스님들에게 설법을 듣는 불자들, 시민선방에서 참선하는 불자들, 안거결제에 참여하는 불자들, 재가자이지만 출가자 중심의 승가에 편입되고 싶어 하는 불자들(재가불자의 일부는 약 15년 전부터 ‘재가불자들도 승가에 포함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과문한 탓이지만 이런 정도의 왕성한 신행활동을 하는 재가불자를 가진 나라들이 있을까 싶다.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한국 재가불자의 모습은 ‘재가불자와 출가승려’의 길을 동일한 성격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재가자와 출가자는 불교의 교리를 이해하는 수준의 깊고 옅음의 차이, 준수해야 되는 계율의 규모와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목표를 구현하기 위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이다. 재가자는 초보적인 것이고 점차 완성도가 높아지면 출가 승려의 단계에 이른다는 소박한 생각이다.

그러나 대승불교적 시각으로 보면 이는 순진한 생각이다. 대승불교는 재가불자들이 불교의 중심이라는 강한 주장을 전면에 내세우는 불교이며, 보살행을 통해 중생계를 불국정토로 만들자는 불교이다. 그래서 ‘비구’라고 불리는 출가승려가 중심이 되는 불교에서 ‘보디사트바(보살)’가 중심이 되는 불교로 바꾸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출가자는 극소수이다(한국의 인구에서 조계종단 스님 숫자는 0.02%임). 그런데 극소수인 출가자가 그들에게 적합한 형태로 불교를 만들어가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명상과 삼매 위주의 불교, 세밀한 교리탐구 위주의 불교는 출가자에게 적합한 형태로 진화된 것이라 생각된다.

재가불자들은 약 2000년 전, 이러한 출가자에게 적합한 불교보다는 일반대중에게 적합하고 필요한 불교를 만들어갔다. 대승불교시대, 대중불교시대를 연 것이다. 일반대중이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는 대승(대중)불교는 출가승려의 불교와 그 방법이 다르다. ‘대승’은 높은 경지를 뜻하는 질적인 표현이 아니라, 소수가 아닌 ‘대중적’이라는 양적인 표현이다.

출가자는 특정한 임무를 수행하는 집단으로서 내부규율인 계율생활을 해야 하는 생활상의 한계가 많다. 그래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잘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못한 일이 많다. 그리고 출가자의 불교는 많은 제약과 한계 속에서 특수한 형태로 진화할 수밖에 없으며, 사회생활을 떠나 있기에 방관적이고 논평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재가불자의 불교(대승불교)’는 생활(직업) 속에서 불교의 가치를 구현하고, 불교의 윤리의식으로 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이뤄가기 위해 사회적 노력을 하는 것이다. 대승정신의 재가불자들은 스스로를 보디사트바로 내세우길 좋아하지, 승가의 일원이 되는 것을 꿈에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출가승려가 대승불교권에 살고 있어서 비록 대승경전을 많이 읽고 보디사트바의 길을 흠모하더라도 그 길을 걸을 수 없다. ‘빽빽한 중생계의 숲에 들어가 그 차별상을 잘 알아서 보시, 애어, 이행, 동사섭의 바라밀을 펼치면서 자비행을 한다는 것(화엄경 십지품)’은 그저 염불이나 설법으로서 밖에 할 수 없다. 우선 계율과 종단의 율법이 사회적 보살행을 제약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첨단문명시대의 사회는 전문적인 학습과 각종 노력을 통해서 그 세부사항이나 전체 시스템을 알게 되는데, 사찰생활과 명상수행에 전념하는 출가승려는 사회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지식과 경험을 갖지 못한다.

대승불교는 이러한 문제를 2000년 전부터 통감하고 세상과 역사 속에서 작동되는 불교를 만들기 위해 대승불교를 표방했다. 재가불자가 앞장서는 사회적 보살행이야말로 대승불교 출현의 원인이다. 출가승려에게 사회적 보살행을 기대할 수는 없다. 오히려 출가승려는 ‘반야를 바탕한 자비방편행을 말하는 대승불교’를 ‘추상적이고 번다한 존재론’으로 굴절시켰고(중국 화엄종), 불교를 심층심리학의 영역으로 이해(중국 법상종)하는가 하면, ‘마음 깨치는 불교’(중국 선종)로 변절시키는 반대승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출가 승려는 과거에도 그러했지만 오늘의 현실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2600년의 지난 모든 불교를 담지하여 다음 세대까지 전승하는 일, 즉 불교의 혜명(慧命)을 잇는 거룩하고 엄숙한 임무를 담당하는 일이다. 출가승려란 불교 선생님(스승)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학교의 선생님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하지만 직접 사회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출가승려도 불교의 역사와 교리를 가르치지만 직접 사회 속에서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출가승려가 대승불교까지도 출가승려에게 적합한 내용으로 해석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경우, 출가승려에게 또 하나 번거로운(좋은 것일 수도 있는) 임무는 지난 1700년간 한반도에서 형성된 불교의 유형적 자산을 관리하고 유지 전승하는 일이다. 이 일은 정말 고달프다. 조계종단의 스님들이 주로 이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애초의 출가목적은 수도하여 훌륭한 도인이 되는 것이었는데, 종단 구성원의 책무상 승납 10년이 넘으면 80%이상이 사찰과 불교자산을 관리 운영하는 일을 맡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게 되는 경우지만, 이 일은 하다보면 익숙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 늘 마음으로 불편해 하기도 한 일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사찰운영과 불교자산을 관리하는 일은 매우 전문적인 능력을 요구한다. 출가승려에게 적합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종무원의 보조를 받는다.

수년 전부터 종단에서는 출가자는 수도와 교화의 일에 전념하고, 재가불자가 사찰과 불교자산을 관리 운영해야 한다는 요구가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재가불자의 역할이 사찰과 불교자산 관리하는 일이라 지나치게 강조한다면 재가불자의 역할을 축소하여 호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사찰과 종단의 관리업무를 담당하는 종무원의 일 또한 중요한 재가불자의 몫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숫자가 많아야 1만 명을 넘을 수는 없는 소수자의 일이라서 언필칭 2천만 불자라 하는 재자불자의 보편적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재가불자들이 진심으로 나아갈 길은 어디인가? 바로 중생계이며, 구체적인 한국사회 현실이다. 화엄에서 말하는 그 ‘중생계의 빽빽한 숲’ 말이다. 거기서 10바라밀을 행하면서 보디사트바의 삶을 사는 일, 이것이 진정 재가불자의 나아갈 일일 것이다.\n\n재가불자가 현실에 지치고 힘들 땐 사찰에 가서 불보살을 경배하며 불교의 가치와 원력을 되새기기도 하고, 출가자로부터 설법을 듣고 위로와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집안에 애경사가 생기면 사찰에서 불공을 하거나 천도재를 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보디사트바의 본령은 바라밀행이며, 재가불자가 반야와 자비를 실현하는 장소는 사찰이 아니라 중생계인 사회현장이다.

생활 속에서 보살행(각종 바라밀)을 행하기에도 바쁜 대다수 재가불자들이 사찰운영, 종단운영을 제대로 하고 있나 살핀다거나, 출가자의 계율준수를 감시하고 지적하는 그런 문제에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일이다.

출가자와 재가불자의 바람직한 관계가 특별하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출가승려는 재가불자를 보디사트바로서 존중하여야 할 것이고, 재가불자는 스님들을 삼보로서 존경을 표하거나, 그럴 수 없는 경우에는 불교관련 특수한 직무를 수행하는 전문인으로 예우하면 될 것이다. 대신 출가자와 재가불자는 각자의 역할과 나아갈 길이 있다. 출가승단은 경제적 측면에서만 국한해본다면 현재 물려받은 사찰과 불교자산을 관리운영하면서 각종 법회를 한다거나 노력을 해서 살아가는데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출가승단은 불교자본가란 뜻이다. 재가불자들이 굳이 2000년전 인도의 무소유승단을 외호하듯 출가승려를 외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힐 것은 없다. 0.02%의 종무원을 제외한 대다수 재가불자들은 이제 홀가분하게 사찰과 출가 승려를 떠나 대승불교의 현장인 사회현장 속으로 들어가 바라밀을 행해야할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불교정신과 가치관이 작동되고 안 되고는 재가불자인 보디사트바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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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한국 재가불자, 왜 승가에 편입되려 하나”
‘마음 깨치는 불교’(중국 선종)로 변절시키는 반대승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어찌 직지인심 견성성불 전법도생함을 종지로 삼는 조계종 교육원장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수 있지? 선종이 불교의 변절이고 반대승적이라고? 모든 중생이 불성을 지녔고, 누구든지 견성하여 성불할 수 있다는 선종이 반대승적이라고? 개구즉착이라더니 입을 여니 무식이 폭로되네. 침묵으로 유되던 허상이 백일하에 드러났구나. 오호라 통재라!(2015-05-15)

대승의 대두는 아라한의 폐단 때문에 반작용으로 성립된 것이고 이 역시 함께 수행하는 승려들이 주도했고 재가불자는 열열히 호응한 것 뿐입니다. 그걸 대승을 일반재가자가 주도했다고 왜곡하면 어쩌자는 것입니까. 부디 부탁하건데 화엄경이 이상적 담론에 불과하다는 것은 철회하세요, 이건 교육원장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근거구요. 누구보다 대승을 전파하는데 앞장서야할 분이 대승을 부정하는 이 모순, 책임지세요(2015-05-15)

견성하면 두가지 부류가 생겨요. 하나는 열반락에 심취하여 계속 명상만 하려는 부류, 하나는 열반을 대중에게 회향하려는 부류. 전자가 소승 아라한 불교, 후자가 대승불교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두가지 특성을 다 갖추셨죠. 그런데 아라한 불교의 폐단이 발생, 불교의 쇄락을 막고 초기불교의 순수시대로 돌아가자는 게 대승운동입니다. 아라한의 폐단을 막기위해 자비실천,중생교화,보살이라는 가치가 중요해진 것입니다(2015-05-15)

대승운동 역시 수행자가 주도한겁니다. 대승운동을 일으킨 수행자들에게 일반재가자들이 폭발적으로 공감을 해서 급속하게 전파된 것이지만 그 기획 역시 당시의 수행자입니다. 소위 아라한 불교의 폐단을 지적하는 승단내부의 승려들, 출가승려들만의 불교를 지양하고 자비실천과 중생교화가 부처님의 진정한 뜻이라고 생각했던 수행공동체의 소수승려들이 주도했던 거에요.\n이건 수행해 보면 저절로 알게되는 이치이기도 합니다(2015-05-15)

현응스님, 화엄경에 나온 가르침대로 실천해 봤어요? 해 보니까 말짱 다 황이고 이상적 담론에 불과했던 거에요? 그러면 정식으로 화엄경 폐기하자고 종단에 건의해 보세요. 불교가 현실과는 무관한 이상적 담론이나 가르치는 관념론입니까? 어처구니 없네요. 지금 스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고 하시는 겁니까. 대승을 전면부정하고 있는거에요. 그리고 누가 대승을 일반재가자가 주도했다고 그래요? 그거 증명된 거에요?(2015-05-15)

화엄경 십지보살 체계가 실현될 수 없는 '이론'에 불과하다? 아, 그런데 그 실현될 수 없는'이론'을 재가불자에게 선생으로 가르쳐야하는게 대승승려의 얄궂은 숙명이고? 재가불자는 무슨죄를 졌길래 실현될 수 없는 이론을 사회에서 승려들 대신해서 '실천'해야하는 운명에 놓여야 하는가? 실현될 수없는 이론을 실현될 수 있다고 교육하고 실천을 강요한다는 것은 곱씹어 생각해도 '사기'다. 지금까지 사기를 가르쳤어요?(2015-05-15)

언필칭. 출가자를 사찰의 재산관리인으로 자칭하는 망동은 한국불교의 썩은 망령이다. 주장자로 30방을 맞아도 입은 살아서 움직일것이다. 승려를 불교자본가 로 정의하는 몰염치의 극치를 보라. 저것은 분명 노망이다. 도려내야한다.(2015-05-14)

조계종단이 대승불교가 아니라 재물관리용 '재승불교'로 전환하는 시점이자 논리로다. 요즘 재가신도들의 지적이 무섭기는 무서웠나 보다. 대승에서 재승으로. 신도들 보시는 환영, 포교는 재가자 너희들이. 이런 논리 개발하느라고 힘썼소.(2015-05-14)

이 기사는 '사실 나는 소승승려입니다' \'우리는 소승이고 싶습니다' \'대승실천은 우리 소승 승려들이 하기에는 무리가 크니 너희들 재가자들이 열심히 해 주세요, 그리고 승가에 감놔라 배놔라 간섭하지 안았으면 합니다' \ '걍 너희 재가자들은 묵묵히 보시나 열심히 할 일이다' \ '솔직히 나는 대승 못하겠습니다 대승포기선언' \ '충격, 대승교육원장 소승 커밍아웃' 이런 정도로 읽힙니다, 불교계 쇼킹뉴스로 뽑힐 사건이죠(2015-05-14 )

대승이 왜 생겼나요? 장로비구들이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구성 폐쇄적인 수행공동체를 운영, 포교 등한시하고 경전에 대한 독점적 해석이나 파벌을 지어 자기들 파만이 옳다고 논쟁이나 즐기며 자기들에게 보시하는 재가불자들의 고통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요익중생! 중생교화가 대승의 궁극인데, 보살행 실천은 재가불자가 할일, 사찰에 짱박혀 이론만 가르치는 것은 승가? 이런 황당한 주장이 어찌 대승입니까?(2015-05-14)

대승에 대한 지나친 자의적 해석이 아닐까 우려스럽다. 더욱이 출가승단을 불교자본가라고 하는것은 부적절하다.(2015-05-14)

한국불교의 역사성, 즉 대승불교의 전통을 되돌아본다면 한국불교 승려들이 남방의 소승불교를 동경해서는 안된다. 면면히 이어져온 대승불교의 전통을 존중하고 따르기를 원해야 한다. 한국승려는 비구계를 받을 때 대승 보살계를 같이 받는 비구보살이다. 그럼에도 한국불교 스님들이 비구만을 내세우며 우리는 비구이지 대승보살은 아니라는 주장은 어불성설로서, 이는 한국불교전통과 역대조사를 부정하는 언행이다.(2015-05-14)

출가자와 재가자는 수레의 양 바퀴처럼 교단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다. 불교는 출가자만의 것도 아니고 재가자만의 것도 아닌, 불교를 받드는 모든 사람의 것이다. 사찰이라는 공간 역시 불교를 받드는 모두의 것으로서 창건, 유지, 관리, 확장되는 과정에서 출가자와 재가자 모두의 협력과 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스님들로선 재가신도들의 외호와 시주는 OK, 간섭과 지적은 NO라고 말하고 싶겠지만.(2015-05-14)

재가불자가 승가의 일원은 아니다. 재가불자가 출가 승가의 일원이 되길 원한다면 그건 아주 잘못이다.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출가자와 재가자는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가자들이 출가자의 잘못을 지적하며 바른 길 걷기를 촉구하는 것이 불편하다 해서 교단, 즉 종단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재가자를 배척하는 태도는 결코 옳지 않다. 오죽 스님들이 잘못하면 재가불자들이 이렇게 나서겠나?(2015-05-14)

교웍원장스님 말씀에 완전 공감합니다. 요즘 일부 재가 단체의 행보를 보면 개탄을 금치 못합니다. 삼보를 받들기는 커녕 알량한 지식을 잣대로 함부로 설쳐댑니다. 본인들의 허물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님들에게만 높은 도덕성을 요구합니다. 같은 불자로서 그러한 삼보를 훼하는 지나친 언행은 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뭐라고해도 불교를 이어가는 가는것은 스님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2015-05-14)

대체 어떤 재가불자가 승가에 편입하려고 한다고 할까. 최근들어 범계에 걸린 한국의 고위급 승려들에 대한 재가자들의 질타를 승가에 대한 재가자들의 지나친 관심 , 혹은 사찰운영권을 획득하려는 재가자의 도발로 보시나? 재가자들은 승가에 돈이나 바쳐라, 대승은 재가자가 실천 덕목이지 출가자의 것이 아니다, 이게 지금까지 수행한 스님의 결과물이십니까? 놀랍네요. 대승이 소수가 아닌 대중의 양적표현? 캬 심각하다!(2015-05-13)

초기불교때처럼 마을과 떨어진 숲속에서 살며 탁발로 구걸하지도 않고, 신도들이낸 시주로 모든 의식주를 다 영위하며, 사회 중산층보다도 더 잘 드시고 비구계이상 받으면 자가용 한대씩 가지신 분들이...대승은 배우면서 실천은 재가자에게 떠넘기고 생활태도, 사회참여엔 소극적인 초기승가의 모습을 원하고 사찰운영및 재산관리는 승려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렇다고 재가자가 관심가지면 안된다 하고 술취하셨나(2015-05-13)

말인 즉슨 대승경전도 한국승려들한테는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이다. 대승의 할일은 재가불자에게 떠넘기고 출가자는 소승적 입장에서 절에 찾아오는 재가자를 학생가르치듯 경전만 가르치면 될 일이라며 대승경전 버려하 하지 않나. 화엄경이 그저 출가자에겐 실천지침서가 아니라 이상적 담론에 불과한 것인가. 참 이상한게 한국승려들은 당신들이 할일을 재가자에게 떠넘긴다는 것, 승려들 범계행위도 방치한 재가자 탓이라나(2015-05-13)

어처구니 없는 뒤죽박죽의 글이다. 출가자한테 사찰운영이나 재산관리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재가불자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끊으란다. 더욱 웃긴것은 출가자가 대승의 이념을 구현하려고 사회에 나와선 안된다는 주장에선 실소를 금치 못하겠고 대승승려를 학교선생에 견주는 것도 동의 할 수 없다, 왜 대승이념도 실천못하는 승려이면서 대승경전을 탐독하는가?(201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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