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가자들, 교단 들러리에 그쳐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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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가자들, 교단 들러리에 그쳐선 안된다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목) 02 09, 2017 7:26 am

재가자들, 교단 들러리에 그쳐선 안된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법보신문 기고 비판 2015.05.15

부처님의 가르침은 대기설(對機說)이다. 어떤 조건에 주어진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재가자라는 상황 자체가 이미 하나의 조건이다. 출가 승려와는 확연히 다른 그러한 조건에 맞게 부처님 가르침을 해석한다는 것 자체가 출가자 중심인 불교에서는 이미 하나의 창조적인 활동일 수밖에 없다. 또한 세속적인 삶을 영위하는 재가불자이기에 이 세속이라는 무대를 불교적으로 가꾸어 나가는 것 또한 재가불자의 신행활동에 있어서 주된 부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재가불자의 독특한 위상은 불교사에 있어 출가 승단 중심의 불교사를 넘어서는 큰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법당에 가서 보살상을 보라! 거의 모두가 재가자의 모습이다. 그것은 대승보살운동의 중심이 재가자였다는 것을 웅변으로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출가자 중심의 소승불교를 혁파하고 우리 삶의 무대를 신행의 장으로 삼는 대승운동이 바로 재가자의 독특한 위상을 바탕으로 한 재가자의 자각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시각의 전환이 있게 되면 겉으로 출가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불교사의 기저에는 언제나 재가자의 변화하는 의식이 새로운 방향타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근-현대의 불교사에 있어서도 이러한 정황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해방 직후의 불교계가 맞은 조건과 상황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조 500년 동안 탄압받아 위축되었던 불교의 위상을 회복하고, 일본불교의 영향을 불식시키며, 서구 문물과 함께 도입된 서양종교 특히 기독교와의 경쟁구도에서 살아남는 것, 급격한 문명과 문화의 현실에 맞추어 불교를 현대화하는 것 등이었다. 이러한 정황 아래서 재가불자들은 얼마 되지 않는 출가 승려를 외호하면서 이른바 정화불사라는 것에서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승려였지만 실제 그들에게 힘을 주어 움직일 수 있게 한 것은 재가불자들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재가불자와 출가자들간의 적절한 유대를 이끌어 내었으며, 또한 출가자를 중심으로 한 승단을 재가자가 외호하는 불교 교단의 기본적인 형태를 이루어 내게 된다. 그런데 조선왕조 동안 천대받았던 불교의 위상을 높이고, 그러기 위하여 가장 선행되어야 할 출가 승려의 위상을 높이는 문제가 여기에 덧붙게 되면서 출가자와 재가자의 신분적 차이가 강조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출가자에 대한 존숭은 불교 교단의 근본적 특성이지만, 그것은 사부대중의 역할 구도에서 나온 것인데, 마치 “사람 위에 스님 있다”는 식의 차별에까지 나가는 부작용을 낳은 측면이 있었다. 승단의 옹호라는 것이 불분명해지고 개인으로서의 출가자에 대한 옹호라는 것으로 변질되면 출가승려 개인에 대한 비판까지도 ‘승보훼방’이라고 말해지며, 스님들을 중심으로 한 신도들의 이합집산이 있게 되는 부정적 측면이 나올 씨앗이 심어지게 된 측면도 있다.

이러한 스님들에 대한 존숭과는 별개로 승단 존립의 기반을 제공하는 실제적인 힘이 되었던 재가자들은 자신들의 시대적 사명과 역할에 대하여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가장 근본적인 것은 재가자들이 단순히 불교 교단의 들러리에 그쳐서는 안 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 구현하는 불교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자각이었다. 승려인 백용성 선사가 중심이 되었지만 실제적으로는 재가 대중을 중심으로 전개된 ‘대각운동’ 같은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만해 한용운도 불교의 교리와 경전, 제도와 재산 등을 민중화해야 함을 강조하며, 민중불교운동이 현실 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과제임을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선구적인 스님들에 의해 일깨워진 의식은 재가불자들의 단지 피동적이고 기복적인 신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깊이 이해하고 깨달음을 위한 수행에 동참하는 주체로 만드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러한 일들은 불교의 가르침을 쉽게 대중화하기 위한 새로운 방편의 모색하는 일들, 또 생활 속에 불교를 실천하는 참된 신행운동 등을 필연적으로 요구하였으며, 경전의 한글화와 불교 공부를 위한 새로운 법회운동, 생활불교운동 등이 도처에서 전개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깨인 재가불자, 수준 높은 재가불자 지성인이 있었으며 깨인 의식을 지닌 스님들과 연대하면서 지속적인 운동을 전개하였다.

오랜 역사적 질곡을 겪어왔고, 급작스런 서세동점(西勢東占)의 상황에서 현실 문제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기존의 불교 종단들은 자체 내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에도 힘이 부친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 현실의 문제를 보다 앞질러 파악하고 불교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낸 시발점이 된 것은 오히려 재가불자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원 장경호 거사, 덕산 이한상 거사와 같이 큰 뜻을 가진 재가자들이 불교의 문제점을 올바로 인식하고, 불교개혁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초석을 놓았다는 것은 현대불교사를 조명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대원 장경호 거사의 뜻은 그 뒤 대한불교진흥원, 불교방송 등에까지 이어지면서 오늘의 불교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되고 있고, 덕산 거사의 큰 서원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등으로 이어지면서 오늘의 불교에 희망의 등불을 밝히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를 전후하여 서돈각, 박성배 등 불교지식인들의 활발한 운동이 일어나고 서울대와 동국대 등 불교학생회를 비롯한 대학생들의 불교활동이 활성화되면서(그 뒤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로 그 활동이 이어진다) 재가불자운동이 불교계의 새로운 동력이 되었다.

백봉 김기추 거사 등 재가 수행자들이 새로운 재가불자의 수행운동을 일으킨 것 또한 주목할 측면이 있다. 이는 선 수행은 출가자들의 독점물이요, 재가자들은 조금 발을 담글 수는 있다고 여겨지던 당시에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출가 수행자와는 다른 재가자의 수행 방편을 통해 재가자도 선수행의 깨달음에 동참할 수 있다는 선언을 한 것은 출가 승려들에게도 큰 자극이 되는 일이었다. 단순한 지식의 영역을 넘어서 깨달음의 영역에 재가불자의 위상을 세운 점이 조명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재가불자운동은 주로 재가자 개인 신행과 관계된 일에 집중되었다. 불교의 현대화라는 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의 것은 아니지만 역시 불교 자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었다. 그런데 차츰 이런 운동들이 결실을 맺어가면서 불교운동의 조건들이 변화되었다. 이제는 불자 개인과 불교 내부의 문제를 넘어, 불자의 사회적 회향과 불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자각이 불교운동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이 깨인 재가불자들의 의식이 있다.

재가불자는 그 삶을 통하여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존재이어야 하며, 불국토 건설의 주체이어야 한다. 불교는 개개인의 괴로움을 구제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되고 대중의 괴로움과 괴로움을 산출하는 사회적 구조를 고치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의식이 일어난 것이다. 또한 불교 교단에 있어서도 재가불자는 단순한 교화의 대상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며, 사부대중의 일원으로 적극적으로 올바른 교단을 이루는데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된다. ‘우리는 선우’, ‘참여불교 재가연대’와 같은 재가불자 운동 단체들은 이러한 이념 아래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사회에 실현함으로써 불교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데 앞장섰으며, 불교적인 이상사회의 모델을 제시하고 새로운 불사 운동을 펼쳐 나갔다. 이는 불교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하였으며, 출가 승단의 행보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몇 번의 ‘법난’이라 불리는 조계종단의 위기상황에 재가불자들이 조직적으로 정법수호에 앞장섬으로써, 사부대중의 일원이라는 분명한 위상을 확인한 일이었다. 재가불자들의 참여가 큰 위기의 극복에 전기가 되었다는 것은 종단 운영에 재가불자의 역할을 확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러한 추세는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승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또 그것이 늘어날 희망도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재가불자의 역할은 나날이 커나갈 수밖에 없다.

중요한 초점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재가불가가 불교에서 소외되지 않고 주체로 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시 두 가지로 요약된다. 향내적(向內的)으로 개인적인 배움과 수행에 있어 주체로 서서 자신의 삶을 불교적으로 바꾸어 나가야한다는 것이요, 향외적(向外的)으로 사부대중의 일원으로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여 불교 공동체의 든든한 기둥으로 서면서, 재가불자의 임무를 다함으로써 현실을 불국토로 바꾸어 나가는 선봉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근·현대 불교사의 흐름 속에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이어진 이러한 방향성을 추구해온 재가불자들의 깨인 활동들이 있다. 이를 이어나가면서 바뀌어가는 새로운 현실에 부응하는 새로운 재가불자운동의 지평을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법보신문에 기고한 ‘재가불자의 길을 묻다-출가자와 재가자의 바람직한 관계’에서 오늘날 한국의 불자들이 승가에 편입되기를 희망하는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이에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는 5월 15일 법보신문 기고에서 “재가불자는 그 삶을 통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존재”라며 “재가자들이 단순히 불교교단의 들러리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성 교수는 특히 “출가자에 대한 존숭은 불교 교단의 근본적 특성이지만 그것은 사부대중의 역할 구도에서 나온 것인데, 마치 “사람 위에 스님 있다”는 식의 차별에까지 나가는 부작용을 낳은 측면이 있었다”며 “승단의 옹호라는 것이 불분명해지고 개인으로서의 출가자에 대한 옹호라는 것으로 변질되면 출가승려 개인에 대한 비판까지도 ‘승보훼방’이라고 말해지며, 스님들을 중심으로 한 신도들의 이합집산이 있게 되는 부정적 측면이 나올 씨앗이 심어지게 됐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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