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좌정신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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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수좌정신은 무엇인가?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토) 09 02, 2017 10:29 am

사진1: 수좌스님들이 종로 보신각 6차 촛불법회에 모여 청정승단구현을 위한 ‘전국승려대회’ ‘범불교도대회’ 개최 결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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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계사 주변은 어수선하다. 단식정진이 진행중이다. 누구를 위한 단식인가하면, 개인의 건강을 위한 단식이 아니다. 청정승단구현을 위해서 종단에 쌓인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기치를 내걸고 스님 두 분이 단식을 하고 있다. 이 분들은 종단에서도 상당한 신망을 받는 스님들로서 젊은 시절부터 철저한 수좌정신으로 살아온 분들이다. 종단에 구체적으로 어떤 적폐가 쌓여 있는지는 확실한 증거와 구체적 사안이 드러나 있지 않아서 뭐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단식을 하고 있는 이 두 분의 스님과 수좌스님들의 언성을 들어보면 뭔가 종단이 정상적으로 굴러가고 있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번 단식 사태를 보면서, 수좌에 대한 정의와 위상을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의미에서 담론을 이어가 보자. 수좌란 일종의 선방의 책임자의 위치를 말한다. 그래서 선방에서는 제일좌(第一座), 좌원(座元), 선두(禪頭), 수중(首衆) 등으로 불렀다. 수좌란 법계의 호칭이 생긴 것은 고려시대로서, 일종의 법계였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에 따르면,

국가에서 주재하는 승과(僧科)의 교종선(敎宗選)에 합격하면 대덕(大德)-대사(大師)-중대사(重大師)-삼중대사(三重大師)를 거쳐 수좌에 이르게 되는데, 수좌는 승통(僧統)의 법계에 이를 수 있다. 수좌에게는 국사(國師) 및 왕사(王師)가 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이 수좌가 법계의 명칭으로 사용되지 않고 선원(禪院)에서 참선하는 승려나 염불당(念佛堂)의 염불승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게 되었다. 특히, 선원에서 수좌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고려시대에 교종의 법계로 채택되었던 것이 어떻게 선종의 승려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원래 이 말이 중국의 선방에서 승려를 지도하는 이에게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인한 변형으로 보인다.

또한 선방의 육두수(六頭首) 중 하나의 직책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선방 내에서 우두머리가 되는 자라는 뜻이며, 때로는 조실(祖室)·방장(方丈)의 역할까지 수좌가 겸직한 경우도 있다. 이 때의 수좌는 선방의 모든 승려를 지도하고, 수행에 필요한 선원의 모든 일을 책임지고 주관하는 역할까지 맡게 되므로, 제일좌(第一座)·좌원(座元)·선두(禪頭)·수중(首衆)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상은 《조선불교통사(朝鮮佛敎通史)》의 설명이다. 수좌의 어원이나 본래의 의미는 법계였으나 그 의미가 차츰차츰 변해서 조선시대를 거쳐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는데, 지금은 어떤 한 스님의 직책이나 법계가 아닌 복수의 의미로서 누구나 선방에서 선 수행을 하는 선반승려들을 그냥 수좌라고 호칭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통칭이다.

사진2: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한 삼장법사가 명상에 대해서 설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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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한국불교는 산중불교로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행하게도 선수행의 전통이 거의 단절되어 가던 상황에서, 경허 성우 대선사가 한국불교 선을 중흥시켰다. 선문구산과 보조국사 태고국사 등이 새롭게 태어나고 부각되는 계기를 맞이했으며, 해방이후에 한국불교는 정화운동과 더불어서 선불교가 부흥하는 계기가 조성되었다. 정화운동의 성공으로 선방이 다시 각광을 받으면서 수좌스님이란 용어가 새롭게 부각되고, 모든 선승들을 일괄해서 수좌라고 부르게 되었고, 총림이 생기면서 선원은 중심역할을 하게 되고 선원은 수좌들이 핵심을 이루게 되는데, 60-70년대가 아마도 최 전성기였던 것이 아닌가한다. 80년대까지도 그런대로 선방의 권위와 수좌들의 정신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상징적 역할을 했던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90년대에도 선방 수좌들이 중심이 되어서 승려대회를 개최하고 종단의 방향을 결정하는 분수령을 만들기도 했다. 2천 년 대에 들어오면서 선방과 수좌들의 권위와 위상은 조금 떨어지고, 주지나 종무를 맡는 행정승 즉 사판이 득세하면서 사찰의 분위기는 바뀌어가고 있다고 본다.

단식중인 한 스님이 왈, “종단이 더 이상 사판의 천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수좌의 시대가 와야 한다.”고 언성을 높인 것을 언론 보도를 통해서 접한 바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현재 종단은 이판사판의 균형이 깨지고 사판이 힘을 얻고 있고, 이판은 점점 소수내지는 힘이 없는 무력한 존재가 되어 가는 것을 지적한 말이라고 본다. 기존의 승려대회가 수좌들이 중심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다수의 사판승들도 이해관계에 따라서 수좌들의 주도에 어느 정도 동조해서 함께 승려대회를 개최했었던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90년대 승려대회는 수좌들의 순수한 부종수교의 종단관이라기 보다는 사판승들의 주도와 수좌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졌었던 승려대회 내지는 개혁모임이었다고 봐진다. 이번에 전국선원 수좌회가 중심이 되어서 승려대회를 개최한다고 선언했는데, 핵심세력은 순수한 선원 수좌들이 중심이 되어서 주동이 되고 있다. 여기에 재가불자들이 합세해서 범불교도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의하고, 촛불법회 형식을 취하면서 세를 불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는 여기서 수좌정신에 대해서 한번 탐구해 보자.

사진3: 태국의 한 숲속 사원에서 명상하는 다국적 비구수행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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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불교에서 수좌의 어원이 어떠하든지 간에 지금의 상황에서 수좌의 정의는 선방에서 성불하겠다고 정진하는 선승을 말한다. 용어는 다를지 모르지만, 선승들은 부처님 시대의 비구들과 통한다. 적어도 한국불교에서는 선승정도가 초기불교나 남방불교의 비구들처럼 원칙을 지키면서 뭔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걸었던 길을 가려고 하는 수행자의 표상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래도 한국불교의 선방 수좌들은 불교 본래의 사문으로서 승가정신을 구현하는 비구로서의 무소유 정신아래 납자의 수행생활을 하는 분들이라고 보며, 한국불교의 청정승가 그 자체라고 본다. 남방불교에도 스님들이 많지만, 전부가 비구로서의 무소유를 실천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명상 승려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스리랑카에도 라만나니까야 파 비구들이 주로 숲속에서 명상을 하면서 무소유의 비구수행을 실천하고 있다. 미얀마도 전체 비구 수에 비교한다면 극히 소수의 비구들이 명상을 하고 오히려 재가불자들이 윗빠싸나에 더 몰두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태국도 다수의 비구들은 사원에서 공부하면서 신도들의 공양에 응하는 포교에 더 열성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선승들처럼 명상하는 비구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음을 알아야한다.

그러므로 나라마다 다수의 승려들이 있지만, 실제 명상(참선)하는 수행승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명상(선)을 하지 않는 승려나 비구가 잘못되었다는 논리는 전연 아니다. 다 훌륭하고 승가구성원으로서의 꼭 필요한 분들이지만, 힘겹게 명상(참선) 수행하는 비구스님들은 더더욱 귀한 존재라고 보며, 불교승가를 이끌어가는 핵심이라고 믿는다. 우리 불교에서는 이른바 수좌스님들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이분들이 보기에 뭔가 승단이 잘못 굴러가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분들의 판단을 존중하고 경청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선도 하지 않으면서 선을 학문적으로만 이론적으로만 하는 작업과 남방불교체험이나 비구생활도 하지 않으면서 남방불교 윗빠싸나를 논하는 것도 어딘지 이상해 보인다. 한국불교를 지키고 승가정신을 지켜가는 수좌정신은 바로 부처님의 혜명을 면면히 계승해 가는 불교 그 자체요 정신이요 보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수좌정신을 잃지 말자.

보검거사: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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