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는 왜 흔들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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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한국불교는 왜 흔들리고 있는가?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화) 08 22, 2017 8:18 am

이제 우리는 한국불교의 현재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면서 어떤 대안을 찾지 않으면 설상가상의 파국으로 치닫고야 만다는 결과를 예측하지 않을 수 없다. 인구 5천만 명의 한국 땅에서 불교의 참 모습은 어디에 있는가. 문화재로만이 남아 있는 우리 불교의 모습, 어딘지 불안해 보이지 않는가. 살아 움직이지 못하고 박물관에 남아 있는 불교를 자랑만하는 불교로 전락한다면 우리불교의 앞날은 어떻게 되겠는가. 스님 한분 한분이 재가의 불교 지도자급 법사 포교사들 한분 한분이 잘해야 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불교를 이끌어가는 종무행정지도자들이다. 왜 침묵만하고 있는가. 본사 주지, 종회의원, 수말사 주지 등 종단의 주요 직책을 맡고 있는 지도자들의 불교관 종단관이 중요하다. 선원도 힘이 없고, 원로회의의 자문이나 충고가 먹히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본사 주지 종회의원직에 있는 스님들의 부종수교의 종단관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조용히 침묵만을 지키는 것은 직무유기가 아닐까.

사진1:한국불교1번지 조계사 정문 앞에서 시위하는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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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시위반대를 외치는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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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조계사 앞을 지나가노라면 눈을 제대로 뜨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눈살 찌푸리게 하는 장면들이 노출되고 있다. 외부의 침입이 아닌 불교 내부의 자중지란에 의해서 불교는 지금 멍들어가고 있다. 누구의 잘못인가.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원로스님들의 충고도 효력이 없을 정도로 약해진 종단 상황을 지켜보면서 과연 해법이 뭔가 한번 담론을 전개해 보자. 이러다간 뭔가 터질 것 같은 위기감이 감도는 조계사 주변이다. 교계 언론마저 양분되어서 어느 쪽의 말을 믿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미한 상황이다. 점점 더 악재가 터지고 승가내부에서는 돌이킬 수 없는 적대감과 상호비방에 의한 모략과 암투만이 횡행하는 춘추전국시대 삼국지 같은 싸움판이 나날이 전개되어 가고 있는데, 과연 우리불교 이래도 되는 것인지 한번 깊이 자성의 시간을 가져보자.

사진3:구국의 성사이신 사명당 송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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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가끔 땀 흘리는 표충비각의 사명대사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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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1천 7백년사에서 가장 훌륭했던 스님은 사명대사라고 생각한다. 왕의 사위로서의 신분도, 왕실출신도 왕자의 신분도 아닌, 사명대사야말로 나라와 백성과 불교를 위해서 한 몸 희생하신 위대한 큰스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명당에 대한 스토리는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어서 더 이상의 상세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다. 간단히 인용해보자.

사명대사는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의 근왕문(勤王文)과 스승 휴정의 격문을 받고 의승병을 모아 순안으로 가서 휴정과 합류하여서, 의승도대장(義僧都大將)이 되어 의승병 2, 000명을 이끌고 평양성과 중화(中和) 사이의 길을 차단하여 평양성 탈환의 전초 역할을 담당하였다. 1593년 1월 명나라 구원군이 주축이 되었던 평양성 탈환의 혈전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그해 3월 서울 근교의 삼각산 노원평(蘆原坪) 및 우관동 전투에서도 크게 전공을 세웠다. 선조는 그의 전공을 포장하여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를 제수하였다.

그 뒤 네 차례에 걸쳐 적진에 들어가서 가토(加藤淸正)와 회담을 갖고, 특히 2차의 적진 담판을 마치고 돌아와 선조에게 그 전말과 적정을 알리는 <토적보민사소(討賊保民事疏)>를 올렸는데, 이 상소문은 문장이 웅려하고 그 논조가 정연하여 보민토적(保民討賊)의 이론을 전개함은 물론, 그 실천방도를 제시하였다. 그는 국방에 있어서도 깊은 관심을 표현하여 산성수축에 착안하였으며, 항상 산성개축에 힘을 다하였다. 그가 수축한 산성은 팔공산성(八公山城)·금오산성(金烏山城)·용기산성(龍起山城)·악견산성(岳堅山城)·이숭산성(李崇山城)·부산성(釜山城) 및 남한산성 등이다. 그리고 군기제조에도 힘을 기울여 해인사부근의 야로(冶爐)에서 활촉 등의 무기를 만들었고, 투항한 왜군 조총병을 비변사에 인도하여 화약제조법과 조총사용법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1604년 2월 오대산에서 스승 휴정의 부음을 받고 묘향산으로 가던 중 선조의 부름을 받고 조정으로 가서 일본과의 강화를 위한 사신으로 임명받았다. 1604년 8월 일본으로 가서 8개월 동안 노력하여 성공적인 외교성과를 거두었고, 전란 때 잡혀간 3,000여명의 동포를 데리고 1605년 4월에 귀국하였다.

사진5: 구국의 성사이신 사명당 송운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표충사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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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호국성지표충사 재악산문 준공 및 현판제막식에서 사명대사의 각령을 위로 하는 명상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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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6월 국왕에게 복명하고 10월에 묘향산에 들어가 비로소 휴정의 영전에 절하였다. 그 뒤 병을 얻어 해인사에서 요양하다가 1610년 8월 26일 설법하고 결가부좌한 채 입적하였다. 제자들이 다비하여 홍제암(弘濟庵) 옆에 부도와 비를 세웠다. 저서로는 문집인 <사명당대사집>7권과 <분충서난록(奮忠舒難錄)>1권 등이 있다.<문화콘텐츠닷컴>

이처럼 위대한 사명대사의 공훈과 업적을 기려서 매년 춘추로 제향(제사)을 모시는데, 밀양 표충사가 지정사찰이다. 표충사에서는 1년에 봄가을로 사명대사님의 영정에 제사를 올리는데, 서산대사 기허대사님에게도 함께 제향을 드린다. 표충사는 이처럼 의미 있는 사찰이다. 한국의 사상사 지성사에서 불교사상을 제외한다면 한국사상사가 형성되겠는가. 조선시대 나라가 경각의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히 일어나서 구국의 선봉에 선 분이 누구인가. 이럴 때 일수록 우리는 사명당 같은 위대한 스승을 생각하게 되고 이 시대에 이런 스승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보검거사: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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