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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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생각해 본다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토) 08 12, 2017 8:33 am

지금 한국불교는 전운이 감도는 듯, 심상치가 않아 보인다. ‘98년은 조계사가 시끄러웠다. 이른바 월하 종정의 교시(유시)가 발표되면서 개혁세력들이 조계사와 총무원을 접수, 49일간 정화개혁회의가 발족한바 있었다. 19년 전의 일이다. 그때는 방법이 다소 전근대적인 밀어붙이기였는데, 이번에는 많이 진화한 것 같다. 제법 세력을 형성하면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촛불법회가 진행될 것 같다. 총무원장 선거와 맞물리면서 촛불법회는 매주 목요일 계속해서 열릴 것 같고, 승려대회가 결국 열리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숨죽이고 있는 부류들이 있다. 이들은 그동안 꿀만 가득 따먹은 자들이다. 앞으로의 행보를 어떻게 할지 두고 볼 일이다.

사진1: 인도 팔라왕조시대(8-12세기)의 부처님, 붉은 가사를 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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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속 간에 이런 상황을 너무나 잘 알아서 단물을 빠는 부류가 있는데, 이들은 불교중흥과 종단 발전보다는 개인의 영리를 위해서 움직이는 자들이다. 사실은 이들이 적폐청산의 대상인데, 숨을 죽이고 웅크리고 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불교 여야에 존재하고, 사찰 청사 등잔 밑에도 재가에도 존재한다. 지금은 불교 언론끼리 대리전을 하는 양상이다. 언론이 죽었다고나할까, 편 가르기에 젖어서 제 기능을 잃고 있다고나 할까, 아무튼 심각하다. 도대체 어느 매체의 보도와 논평을 믿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혼란에 빠져 있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나는 한국불교를 보면, 도대체 정체성이 뭔가 의심이 갈 정도로 승가의 모습이 항상 불만이다. 정체성의 상징은 무엇보다도 승가의 모습이고,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출가승의 의제와 의식이 아닌가 한다. 의제에 대해서 담론을 전개해 보면 첫째는 가사와 승복의 색깔 문제이다. 밖에 나가보면 한국스님들만이 유독 눈에 띠게 승복이 회색이다. 중국이나 대만 베트남이 우리 불교와 비슷한 승복을 입었으나, 지금은 황색으로 바꾸고 가사도 홍 가사를 수하고 있다. 남방 상좌부의 가사와 승복은 대동소이한 색깔이고, 티베트 라마들도 붉은색 아니면 자주색이다. 율장에 보면, 가사 색과 승복에 대한 색이 규정되어 있다. 우리나라 불교의 스님들은 언제부터 지금의 회색 승복을 입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조선시대에 아마 고착되었지 않나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의 가사와 승복 색깔이 전통이라고 할지라도 한번 고증해서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의 출가 비구승들의 가사와 승복색깔이 우리와는 맞지 않고 어딘가 다르다면 깊이 연구해서 동일성을 유지해야하는데, 이런 마인드가 전연 없다. 또한 오직 간화선만을 주창하면서, 간화선 수행법이 불교 유일의 수행법인양 일관하는 것도 어딘지 불교 본래의 정통성과 정체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 아닐까 한다. 가사(袈裟 Kāṣāya)는 비구 비구니계를 받은 승려가 입는 옷인데, 상.하의와 겉옷 격인 가사가 있다. 대체로 색깔은 갈색이나 사프란의 황색이다. 보다 전문적인 술어로는 찌와라(cīvara)라고 한다.

불교에 있어서의 가사는 고오타마 붓다로부터 연유한다. 인도에서 특히 농부들이 입고 버린 천 조각을 한데 모아서 만든 옷에서 기인하는데, 이 천조각을 한데 기워서 세 가지의 옷을 만들었다. 이 세 가지 옷이란 안따라와사(antarvāsa下衣), 웃따라상가(the uttarāsaṅga 上衣)와 상가티(saṃghāti)를 말한다. 안따라와사는 하의로서 몸의 아랫부분을 가리고, 웃따라상가는 몸의 윗부분을 가리고 아래로 내려오는데, 이른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사이다. 상가티는 겉옷으로서 다양한 용도로서 사용되었고, 이불의 역할도 하였다.

사진2: 비구 비구니의 삼의(三衣 티찌와라 ticīv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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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음광부의 비구들이 수했던 목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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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좌부에서는 이 삼의의 원칙을 철저히 따르는데, 율장에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두 개가 더 추가된다. 허리에 찬 천과 일종의 허리띠인 쿠살라카와 삼마칵시카kushalaka samakaksika)가 있는데, 태국에서 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비구의 상징은 삼의일발(三衣一鉢)이라고 하는데, 세 개의 옷과 한 개의 밥그릇을 말한다. 이 삼의일발이 소유의 전부이다.

비구의 삼의일발은 시대가 변천하면서 색깔에 다소 변화가 왔다고 할지라도 대체로 비슷했다. 부파불교 시대에 파에 따라서 대개 홍색, 황토색, 청색과 흑색을 입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원후 148-170 사이의 파르티아(이란) 출신의 안세고가 중국에 와서 《대비구삼천위의大比丘三千威儀)》란 책을 썼는데, 여기에 의하면 설일체유부(Sarvāstivāda)는 진한 홍색의 법의를 입었고, 사리푸트라파리프르차(Śāriputraparipṛcchā)가 지은 텍스트에 의하면 흑색을 수했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진한 홍색과 흑색을 겸용했던 모양이다.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율장을 전하고 수계의 맥을 전수해 준, 법장부파(Dharmaguptaka)는 안세고에 의하면 흑색, 사리푸트라파리프르차는 진홍색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두 사람 다 대중부(Mahāsāṃghika)는 노란색 황색으로 기록하고 있다. 화지부(Mahīśāsaka)는 청색, 음광부(Kaśyapīya)는 목련색이었다고 한다. 목련은 백목련도 있고, 붉은색도 있어서 겸용했다고 추측해 본다.

티베트 라마들의 법의는 근본 설일체유부의 전통을 따랐으므로 진홍색인 자주색의 가사를 입은 것이 지금까지 전통으로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초기에는 홍색이었지만, 나중에는 지역에 따라서 다소 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중국불교에 있어서의 수계전통은 법장부파만이 살아 있기에 흑색과 진홍색을 수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나라 때는 다소 회색빛이 도는 흑색 즉 치의(緇衣)를 수했다고 한다. 《송고승전》을 쓴 찬녕(919–1001)에 의하면 한나라 위나라 때는 홍색의 법의를 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나라 때는 승려들의 법의 색깔이 황제의 관복색깔과 같다고 해서 그 색을 피해서 치의 색을 띠게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한국불교는 당송 시대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중국 승려들의 법의 색깔을 따랐겠지만 지금 중국 승려들의 법의 색은 황색으로 전부 바뀌었다. 상하 법의는 황색으로 가사는 홍색이다.

사진4: 태국의 아잔 차 대선사 열반 16주기에 운집한 아잔 차의 제자들(2008년 1월 16일).
서구불교 출신 비구가 가장 많이 입문하는 아잔 차 대선사가 주석했던 왓 파 퐁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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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정체성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세계불교의 다른 비구 비구니들과 공동보조를 취해야 하는데, 유별하게 독자노선만을 고수한다면 개성 있는 특별한 전통이나 우월성의 종파로 인정을 해주기보다는 별난 불교로 인식해서 오히려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걱정된다.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의 모임에 나가보면 한국불교의 승려들의 법의는 어딘지 좀 이상해 보인다. 불교의 정통성과 역사성에서 멀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승려로서 그렇게 인식이 된다고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다른 나라 불교 승려들과의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상하법의와 가사 그리고 장삼을 한번 해체해 보자. 아무 관련이 없는 장삼이 들어가 있다. 중국불교에서도 장삼은 없다. 사실 두루마기도 불필요한 법의이지만, 장삼은 더더욱 관련이 없는 법의라고 생각한다. 물론 날씨와도 관계가 있었겠지만, 지금 시대에서 두루마기나 장삼을 꼭 입어야 하는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상하 법의에 가사만을 수하는 간편한 법의 즉 의제를 생각해야 하고, 물론 법계에 따라서 권위를 나타낸다든지 수계의식이나 어떤 특별한 법회에서 착용할 필요를 느낀다면 해당되는 스님들에만 착용하도록 하는 제도를 확립하면 되지 않을까 한다.

남방 상좌부의 경우, 이제 갓 비구가 된 초참 비구나 수십 년이 된 고참 비구의 법의는 똑 같다.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다 같은 비구요 동일한 정체성을 갖는 승가의 일원인 것이다.

보검거사: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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