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자비 구족한 균형불교

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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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자비 구족한 균형불교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목) 08 03, 2017 6:21 am

우리 불교에서 지금 비판적인 부분을 적시하라고 하면, 한두 가지가 아니련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이슈가 바로 불교 근본 문제인 지혜와 자비이다. 수행불교 깨달음 불교를 유난히도 강조하는 한국불교는 자비에 대해서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10여 년 전에는 자비문중이란 단어가 승가에 미덕으로 자주 거론되곤 했다. 근자에 와서는 자비란 말이 사라지고 없다. 승가분위기가 그만큼 삭막해졌다. 지혜란 선용하면 좋은 진리의 말씀이 되지만, 악용하면 모사 술수 꾀로 변한다. 자비가 없는 이런 지혜는 자칫하면 악용되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독약이 될 수 있다. 조용히 앉아서 명상을 하면서 맑아진 마음으로 항상 좋은 것만을 염(念)해야 하거늘, 속으로는 엉뚱한 모사를 꾸미고 술책을 간교하게 획책하는 음흉한 모략을 꿈꾼다면 이것은 명상이 아니라, 꾀를 짜내는 마군(魔軍)인 것이다. 우리의 주위를 한번 돌아보자. 건혜(乾慧=잔꾀)만 무성하고 진정한 지혜와 자비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풍토란 것을 한번 깊이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사진1: 부처님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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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상징은 바로 미소이다. 부처님은 깨달은 분이기도 했지만, 자비무적의 미소 법왕이었다. 불교에서 지혜에 대한 지식은 너무나 흔하게 알려져 있어서 여기서 구태여 사족을 달지 않아도 되겠거니와 자비에 대해서는 좀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자비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불교에서 자비를 전문 술어로 ‘메타(Mettā)라고 한다. 산스끄리뜨어로는 ’maitrī‘라고 한다. 대체로 몇 가지의 뜻을 갖고 있는데, 영어로 풀이해 본다면 benevolence, loving-kindness, friendliness, amity와 good will 등이다. 통틀어서 한역에서는 자비(慈悲)로 번역을 했는데, 사무량심(Brahmavihāras)인 자비희사 가운데 첫 번째가 자(慈)이다. 또한 10바라밀 가운데 하나가 메타(자비)이다. 인간에게는 성선(性善)과 성악(性惡)이란 양면성이 있다. 중국에서는 인간은 본래 ’선‘이다. 또는 ’악‘이다. 라고 논쟁을 했지만, 인도 문화권에서는 자비란 본래부터 길러야 한다는 쪽으로 본 것 같다. 그러므로 ’메타 바하와나(mettā bhāvanā)‘라고 해서, 자비개발(자비명상)이라고 했다. 명상이란 즉 마음 밭을 가꾸는 행위이다. 자비관(慈悲觀)을 기르는 수행을 한다. 근기가 낮은 초심자들은 바로 이 자비명상부터 해야 하는 것이다. 참선하는데 상근기는 바로 화두공안선을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하근기가 하는 자비명상은 무시해 온 전통이 있는데, 요즘 같은 풍토에서는 자비명상이 정말 필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불문에 오래 계신 분들을 보면 자비스러운 모습을 하는 스님들이 많고, 보살님들도 자비스런 얼굴을 하는 분들이 많은데, 고승가운데서도 인상을 쓰는 분들을 더러 보게 된다. 험악한 얼굴에 화를 내면서 법문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왜 저런지(?) 하고 의아심을 갖게 하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된다.

사진2: 효봉 대선사의 자비스런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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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달라이 라마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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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억한다. 효봉 대선사의 자비스런 얼굴과 미소가 얼마나 정다운 모습인지 말이다. 효봉 대선사의 얼굴 그 자체는 자비도인 그대로의 모습이다. 또한 달라이 라마의 미소 또한 일품이다. 순수한 거짓 없는 미소 그 자체는 바로 자비심 그대로이다. 이 분들의 미소에 누가 토를 달 수 있겠는가. 필자의 설명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도인은 바로 자비보살인 것이다.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 설법을 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불교 몰라도 너무 모르는 분들이라는 한숨을 쉬게 하는 분들이 종종 있는데, 정말 우리 불교에서는 사라져야할 풍토이다.

너무 지혜와 깨달음만을 강조하다보니, 자비가 메마르고 얼굴이 상기되고 화가 가득차서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웃음이 없는 불교를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요즘 한국불교계는 너무 경직되어 있다. 이젠 거리에 까지 나와서 격렬한 법담(法談)(?)을 설파하고 있다. 이런 법담도 웃으면서 할 수 없을까. 이렇다보니 불교신도들도 자비미소가 인색해져 버렸다. 웃지 않는 불교, 왜 이런 종교가 필요하겠는가. 미소로써 중생을 보듬어 주는 종교적 사랑과 봉사가 제대로 작동되는 그런 종교가 본래 불교인데, 최근의 삭막한 분위기는 너무나 불교와는 거리가 멀다. 균형 잡힌 불교로 돌아가자.

보검거사: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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