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17 / 태국사회와 新 불교운동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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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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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17 / 태국사회와 新 불교운동 모델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수) 08 31, 2016 7:33 am

태국사회와 新 불교운동 모델

태국사회는 전 분야가 불교와의 관계 속에 놓여 있어서, 불교를 떠나서는 이야기가 안 될 정도로 불교적 사회구조이다. 벌써 태국 땅에 불교가 수용 된지도 어언 800여년이 지나고 있다. 결코 짧은 연륜이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태국불교는 방콕 짜끄리 왕조 시대에 형성된 불교이다. 그렇지만, 수코타이와 아유타야의 불교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다. 이런 불교전통은 전적으로 실론(스리랑카)에서 들여온 불교 전통이었다. 실론불교는 인도에서 전해온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국 태국불교는 →실론(스리랑카) →인도불교에 맥이 닿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통을 갖는 태국불교는 아유타야 시대에 버마로부터 큰 타격을 입고, 방콕으로 왕조의 수도가 천도하면서 불교도 명맥은 유지했지만, 승가는 다소 느슨해지고 말았다. 이에, 승가정화운동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담마유티카 운동이며, 정법으로 돌아가자는 정화운동이다. 담마유티카 니카야는 태국불교에서 하나의 정통보수파로 자리 잡게 되었고, 느슨한 태국승가를 항상 견제하면서 자극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 지금도 태국승가에서는 신망이 높은 보수정통파이다. 그렇다고 마하 니카야인 대중 진보파가 타락했느냐 하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계율 상으로 조금 느슨할 뿐이다. 오후불식은 기본이지만, 오후에 주스를 마시고 우유를 마시도록 다소 완화했을 정도의 경미한 계본(파티목카)의 변화다. 반면 담마유티카는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는다. 오직 물과 차 정도의 음료(drinking)만을 인정하고 우유도 못 마시게 한다. 두 파의 차이는 이런 정도의 경미한 계율상의 문제이다. 현재의 스리랑카 승가의 시암니카야 파는 태국의 아유타야 승가의 율맥(계맥)이 스리랑카에 전해진 파이다. 버마에서 계맥을 전해 온 두 파가 있는데, 현대 스리랑카 승가는 인도차이나 승가가 다시 역수입된 것이다.

사진1: 수십만 명이 운집한 담마카야 사원의 법회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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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태국불교는 승가가 너무 보수화되면서 출가승 위주의 구조로 고착화되었고, 신도들을 위한 공덕 쌓기만을 미덕으로 삼는 태국승가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그 단체가 바로 담마카야란 신흥불교 모델이다. 현대 태국사회의 중산층들에게 어필하는 신 모델로 등장한 담마카야는 일취월장으로 성장하게 된다. 왓 프라 담마카야는 일종의 사원이다. 줄여서 담마카야라고 부른다. 1970년에 루앙 포 담마자요(1944-) 스님에 의해서 설립되었는데, 그는 마하 니카야 출신 비구이다. 그는 루앙 푸 솟 찬다사로(1884–1959) 큰 스님의 지도이념을 따르고 있다. 루앙 푸 솟 찬다사로 큰스님은 방콕의 한 큰 사원인 왓 팍남의 주지를 역임하신 분으로 담마카야(法身) 명상으로 도통한 유명한 분이다.

사진2: 故 루앙 푸 솟 찬다사로 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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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담마카야 사원을 설립한 루앙 포 담마자요 주지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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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담마카야 사원 공동 창립자인 찬드라 비구니 대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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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담마카야의 실질적인 창립자는 메치(비구니)출신인 찬드라(1909-2000) 비구니스님이다. 이 비구니 스님은 왓 팍남 루앙 푸 솟 찬다사로 대선사 큰스님 문하에서 한 소식 한 것으로 인가를 받은 분이다. 이 분이 현재의 담마카야 사원을 세우신 분이고, 이 비구니 스님이 픽업한 스님이 루앙 포 담마자요 주지스님이다.

여기서 담마카야에 대한 장황한 소개를 한다는 것은 지면이 너무 짧지만,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담마카야가 태국불교에, 태국 사회에 뭔가 메시지를 강하게 던졌다는 것이다. 메시지를 던지면서 태국사회와 태국 불자들에게 어필되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수백만 명의 불자들이 이 사원으로 몰려갔고, 이 사원에서 새로운 비구들이 수계를 받고 엄청난 승가를 형성하고 태국의 기존 승가에 큰 물결로 다가 와 버렸다. 사람이 몰리니까 정치인들도 기웃거릴 수밖에 없고, 왕실마저도 무시할 수 없는 단체로 성장해 버렸는데, 문제는 담마카야의 불교권력이 태국 승가에 까지 영향을 미치려고 하다 보니, 기성승가와의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다소 분쟁까지 생기게 되었다. 불자들과 태국사회에서는 담마카야를 인정하고 추종하지만, 기성승가에서는 쉽게 이들의 정체성을 인정해주기가 달갑지 않는 것 또한 현실이다. 담마카야 출신 신도들은 이제 국제 불교단체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다 보니 다소 마찰이 일어나고, 현재 태국의 상가라자(승왕=승가 최고지도자) 임명에 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태국 정부에서는 담마카야가 비리가 있다고 수사를 할 정도이다.

사진5: 수만 명의 비구들이 새로 탄생하는 수계의식이 담마카야 사원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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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수만 명의 불자들이 몰려드는 담마카야 사원의 한 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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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태국불교의 실상인데, 태국승가는 지금 보이지 않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태국의 기성승가 그 자체는 고착되어서 출가승 위주의 구조로서, 지계 청정한 승단을 형성하고 있지만, 재가불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기복적 공덕이나 쌓는 하나의 신자일 뿐인 것이다. 공양이나 올리고 구태의연한 공덕이나 쌓는 구습의 신자역할에 지나지 않는 것에 대한 어떤 씁쓸함이 있었는데, 담마카야는 이런 구습을 과감하게 무너뜨린 신 모델로 등장한 것이다. 뭔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세련되고 저 서양의 가톨릭이나 개신교처럼 모임 그 자체가 현대적인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는 점에 태국의 중산층들이 몰려 버린 것이다.

담마카야는 담마카야 명상 수련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신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이것이 성공한 것이다. 사원에 와서 비구들에게 공양이나 올리고 약값이나 내고, 공덕이나 쌓는 기성불교의 구습을 탈각해서 신자들이 주인이라는 참여자로 전환한데서, 태국불자들은 감동해 버렸고, 신식 스타일 불교가 자신들의 사회적 경제적 여건에 맞아 떨어지는 자긍심마저 갖게 되고, 담마카야 명상을 통해서 수행을 할 수 있으며, 열반을 성취할 수 있다는 종교적 열망이 맞아 떨어져 버린 것이다. 보이지 않는 엄청난 불교개혁의 소용돌이가 수면아래서 전개되고 있는데, 기성승가에서는 어떻게 보면 구습에 그대로 안주해서 이런 변화를 쳐다만 보면서 다소 언짢다는 태도이다. 하지만 담마카야는 너무나 덩어리가 큰 단체로 성장해서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대상을 넘어서 버린 것이다,

사진7: 전 TV연예인 겸 작사가 출신으로 채식을 주장하는 산티 아속의 창립자, 프라 보디락 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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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력은 그다지 크지 않지만, 태국불교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분은 전에 TV 연예인 출신으로 작사가이기도 한 프라 보디락 비구이다. 그는 1975년에 산티 아속을 창설했는데, 기존승가에 입문했다가 바로 나와서 신생 파를 만들었으나 기존 승단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산티 아속의 주장은 비구들은 채식주의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태국이나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비구들은 신도들이 공양하는 모든 음식을 먹는다는 원칙하에 육식도 하는데, 프라 보디락 비구는 육식 금지와 채식위주로 전환해야한다는 것을 역설하는데, 어느 정도 호응을 받은 바 있으나, 담마카야 사원처럼 크게 발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태국승가와 태국사회에 일정부분 메시지를 준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우리불교로 눈을 한번 돌려보자. 우선 중국에서도 항상 개혁불교는 있어 왔다. 12종파가 다 당시에는 신 불교개혁운동이다. 가장 성공한 종파는 선종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선종이 들어오면서 불교계는 5교 9산으로 압축되었다가 나중에는 9산 선문이 세력을 얻어서 선불교가 크게 융성하게 되었다. 조선조에는 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산중으로 피해 가서 숨죽이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부단한 자기 쇄신을 위한 몸부림이 있었다. 해방 후에는 승가 정화운동이 일어났고, 그 승가정화운동은 ‘80년대에 이르면 벽에 부딪치고 승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해 나간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태국의 담마카야처럼 新 불교운동이 일어나지 못한 것은 00종의 강한 결속력이다. 00종은 모든 사찰이 ‘00종’ 명의로 등기되어 있다. 설사 00종 내에서 운동을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다만 원00라든지 진00 등은 일찍이 신 불교운동으로 독립했고, 천00은 ‘60년대에 출범했지만, 어느 정도 성공한 종단이 되었다. 수많은 종단들이 명멸하고 재가불교단체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탄생하지만, 신 불교운동 단체로 성장하지 못하고 좌절해 버리는 것은 기성 종단의 막강한 결속력이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 불교의 기성종단에서 개혁을 하지 않고, 어떤 신흥세력에 의해서 불교개혁을 도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일본 만해도 기성종단이 아닌 신흥 불교세력이 일어날 수 있는 풍토가 되어 있어서 창가학회 같은 단체가 성공한 신불교로 등장해서 지금은 전 세계에 엄청난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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