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15 / 태국승가 보수 대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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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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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15 / 태국승가 보수 대 진보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토) 08 27, 2016 6:07 am

태국승가 보수 대 진보

태국불교는 단일승가이다. 여기서 단일승가란 표현은 종파가 하나라는 의미이다. 물론 태국승가는 담마유티카 니카야와 마하니카야의 두 파가 있지만, 이 니카야인 파의 개념은 우리가 의미하는 그런 종파나 부파의 개념보다는 단일승가 내에서 약간의 이념상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경미한 것이다. 사실상 역사적으로 태국승가는 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엔 수코타이 왕국에는 스리랑카에서 온 승가가 먼저 형성되었다. 수코타이 제3대 왕이었던 람캄행 왕 때에 이미 지금의 태국 땅인 나콘 스리 탐마랏에 있던 스리랑카 승단에서 고승을 초빙하여 승가를 설립했다. 그리고 랑카 고승을 이른바 최고 승직인 상가라자(승왕=승가의 최고지도자)에 임명하고 승단을 대표하도록 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서 승단은 두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감마와시와 아라나와시(the gāmavāsī/the arannavāsī) 파가 그것이다. 감마와시 파는 타운이나 마을의 사원에서 기거하면서 부처님의 말씀인 경전을 공부하면서 신도들에게 불법을 전파하는 우리가 지금 흔히 태국사회에서 보는 비구들이다. 반면에 아라나와시 파의 비구들은 숲속 사원에서 살면서 주로 위빠싸나 명상이나 사마타 명상 수행을 하면서 부처님이 깨달았던 열반을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 두 파의 주지들은 다 같이 상가라자의 통제 하에 있었다.

사진1: 붓다몬톤의 서있는 불상 앞에서 법회를 개최하고 있는 태국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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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아유타야 왕국 시절에는 이 두 파 외에 감마와시 파에서 하나가 더 생겼다. 감마와시 소속 비구들이 스리랑카에 직접 가서 수계 받고 계맥을 계승해 와서는 좌측 감마와시 파를 분립해서 세운 것이다. 그래서 승가는 좌우측 감마와시 파로 분립해서 사실상 두 파가 되었고, 아라나와시 파는 그대로 단일파로 존속해서 아유타야 승가는 3개 그룹으로 존속했다. 아유타야가 무너지고, 탁신 왕조가 15년간 들어섰는데, 승가는 타격을 입었지만, 아유타야의 승가를 그대로 계승해서 3개 파가 그대로 존속했는데, 다만 그 명칭을 좌우측에서 남북구역으로 바꾸고 아라나와시는 그대로였다. 다만 3개 그룹을 망라해서 상가라자(승왕=종정)는 한 명이었고, 감마와시의 남북구역에 구역장을 뒀고, 아라나와시에도 똑같이 파의 최고위직을 부여했다. 하지만 상가라자는 한 명이었다. 그러다가 네 그룹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기존의 남북구역에서 방콕을 중심으로 한 중앙그룹이 하나 더 생겨서 감마와시 파는 남북 중앙의 3개 구릅이 되었고, 주로 숲속 파인 아라나와시는 그대로 존속해서 타이 승가는 4개 파가 되었다.

이후에는 마하니카야파와 담마유티카파로 두 파만이 남게 되고 칙령(왕)반포에 의한 승가행정기구가 출범하게 된다.

사진2: 숲속에서 생활하는 아라나와시 비구와 사미들이
탁발을 한 후 숲속 사원으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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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02년 승가법이 제정되고, 1941년과 1962년 개정된다. 요지는 상가라자가가 전체 태국승가를 대표하고 통제하도록 한 권한부여와 모든 사원과 승려들에 대한 권리와 의무 그리고 신분보장을 위한 승려헌법과 같은 법률이다. 현재의 상가라자는 1962년에 제정된 승가법에 의해서, 1963년에 신설된 승가최고회의에서 선출하도록 했다. 승가최고회의에서 동의하여 태국 정부 수상의 추천으로 왕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태국의 상가라자는 마하니카야파와 담마유티카파를 대표하는 단일 상가라자인 것이다. 제1대 상가라지는 1782년에서–1794년까지 재직한 썸뎃 프라 아리봉사나(Somdet Phra Ariyavongsanana) 비구를 초대 상가라자로 해서, 19대인 썸뎃 프라 냐나상와라(Somdet Phra Nyanasamvara) 상가라자로서 1989년–2013년에 이르기 까지 24년 재직하시고 입적하셨다. 이 분은 필자가 1980년대 초 태국에서 비구생활을 할 때, 필자의 은사이기도 하시다. 필자의 은사이신 썸뎃 프라 냐나상와라 상가라자가 2013년 입적한 후, 현재 신임 상가라자를 선출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3: 감마와시파의 전통을 계승한 비구스님들에게 공양을 바치는 태국 불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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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파인 담마유티카 니키야는 1833년 몽꿋(라마 4세 왕)에 의하여 주도된 승가의 개혁파이다. 1902년 승가법이 제정되어 문서화 될 때 까지 지속되었으며, 1902년 태국 승가의 소수파이긴 하지만, 하나의 파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서 현재는 태국 승가의 양대 산맥인 두 개 파 가운데 한 파로 정착되었고, 제10대 상가라자에 몽꿋 왕의 아들이기도 한 썸뎃 크롬 프라야 와지라나나와로라사(Somdet Krom Phraya Vajirananavarorasa) 비구가 담마유티카 니카야 파 출신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1910년–1921년 사이에 상가라자로 재직했다. 이로써 나머지 파는 자동적으로 마하니카야 파가 된 것이다. 수코타이와 아유타야 시대에 분파했던 파들은 자동으로 마하니카야 파로 흡수되었지만, 숲속 파였던 아라나와시 파도 일부는 마하니카야로 일부는 담마유티카 파로 소속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라나와시 파는 거의가 담마유티카 파로 흡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보수 대 진보란 단순히 간단한 계율상의 차이일 뿐이다.

사진4: 왕자 출신 상가라자 와지라나나와로라사 담마유티카 비구 (1860-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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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담마유티카 니카야에서 상가라자를 배출하고 있다. 현재 상가라자 대행을 맡고 있는 스님은 마하니카야 출신으로 승가최고회의에서는 동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수상이 아직 추천을 하지 않아서 왕이 임명을 하지 않고 있으며, 다소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5: 제19대 상가라자를 역임한 썸뎃 프라 냐나상와라 비구(1913-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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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승가는 스리랑카 승가에서 전통을 계승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태국승가에서 계맥을 다시 스리랑카에 전해준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이처럼 남방 상좌부는 계맥에 의한 정통성을 부처님승가와 연결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계맥의 단절은 곧 승가의 단절로 보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태국승가는 남방 상좌부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대개 한국 사람들은 태국을 가면 태국 불교를 보고서, 매우 신기하게 생각하는데 그것은 우리 불교와는 전통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태국불교는 인도나 실론의 원형불교에 너무나 가까운 불교전통이지만, 우리 불교에 젖어 있는 한국인이나 불자들은 오히려 이런 불교를 생소하게 느끼는 것이다. 마치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나 로마에 가면 기독교의 원형을 보게 되는데, 개신교가 기독교의 참모습인 것처럼 생각하고 느끼는 거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개신교는 프로테스탄트 기독교인 것이다. 문자 그대로 개신교(改新敎)인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이런 개신교를 보고 마치 기독교의 원형인양 생각하는 것처럼, 종교란 이처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전통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관점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불교를 냉정하게 한번 생각하면서, 우리 불교의 참모습을 한번 진지하게 사색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창가학회도 보면 사실 재가 개혁불교로서 신종교인데, 이런 불교의 한 파를 추종하고 믿는 숫자가 많아지면서 세력이 커지면 하나의 종교단체가 되는 것이다. 또 우리나라 불교에도 많은 종파가 있다. 원00, 진00 등 재가종파가 있는데, 이런 개혁성향의 불교도 우리사회에 적응하면서 하나의 종교단체로 자리 잡아 가는 것은 많은 종교현상에서 볼 수 있는 실체이다. 이런 현상을 무시하고 변할 줄 모르는 우리 기성불교에서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고 어떤 대응책을 세우지 않으면 기성불교체계는 갈수록 교세가 약해진다는 엄연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다시 이야기를 태국불교로 돌아가 보자.

남방 상좌부가 불교의 적통 종가집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시비의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고, 인식을 바로 하자는 것이고, 사실은 사실대로 인지해서 우리 불교의 정체성을 확립하자는 것이 이 글의 취지요 목적이다. 남방 상좌부가 적통 종가집이라고 인정한다고 해서, 우리 불교가 약해진다느니 아니면 존립이 어렵다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왜 우리 불교는 교세가 약해지고,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를 한번 냉정하게 반성하고 재점검해 보자는 취지이다.

태국 불교라고 해서 갈등이 없고 100% 인도의 원형불교를 하고 있느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는 것이다. 태국사회에서도 기성불교에 식상해서 새로운 불교를 지향하는 신도들이 수없이 많은 것이다. 태국의 기성불교에 싫증을 낸 중산층들은 담마카야라고 하는 새로운 모델의 불교에 열광하는 것은 뭔가 이들에게 어필하는 불교를 창조해서 활동하기 때문인 것이다. 억지로 통제하고 막는다고 해서 이런 물결이 잠재워지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이면서 태국불자들의 불교에 대한 변화된 관점인 것이다.

사진6: 태국사회에 새로운 불교의 모델을 창조하고 있는 담마카야 사원 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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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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