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12 / 미얀마승가와 명상수행

(보검법사)
lomerica
전체글COLON 275
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12 / 미얀마승가와 명상수행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월) 08 22, 2016 6:06 am

미얀마승가와 명상수행

미얀마불교에 대해서 소개하자면 전집으로도 부족할 정도로 미얀마 불교는 풍성하다고 하겠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승가이다. 옷을 벗을 때 벗을 지라도 가사를 입고 있는 순간만은 확실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고, 또한 승가에 입문하면 사미나 비구는 철저하게 승가교육의 절차에 의해서 교육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비구니 역할을 하는 띨라시도 승가 공동체의 규율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교육과 수행에 전념한다는 사실이다. 승가생활이 편하면 편할수록 결국에는 승가는 느슨하게 돌아 갈 수밖에 없고, 종국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거나 재가와의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외면 받는 지경에 까지도 이를 수 있다는 교훈이다.

사진1: 법회에 참석해서 비구스님으로부터 법문을 듣고 있는 미얀마 불자들.
12me01.jpg
12me01.jpg (10.87 KiB) 103 번째 조회

미얀마 정부에서도 많은 예산을 불교에 투입해서 비구들의 교육과 수행을 돕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런 정부의 후원을 혹자는 평하기를 군사정부의 당근이라고 말한다. 군부가 통치를 위한 선심이라고 혹평하는데, 그렇게 보는 관점에는 선입견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군부의 당근 정책이전에 미얀마의 불교역사를 먼저 공부하고 불교가 미얀마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는 아량이 필요하다고 본다. 불교란 종교를 그런 식으로 해석하려는 의도는 어딘지 좀 잘못된 데가 있다고 본다.

비구가 50만 명이나 되다보니 그 가운데에서 삼장법사가 출현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우선 수가 많아야 그 가운데서 훌륭한 선지식이 출현한다는 의미이다. 세계불교사에서 보더라도, 이런 관점은 틀리지 않는다고 본다. 인도에서 많은 고승석덕이 출현했는데, 인도불교 전성기에는 백만 명이 넘는 비구들이 인도 전역에서 교육에 열성적이었고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다. 중국 당나라 때도 승려가 백만 명이 넘었다. 당나라 시대에 얼마나 많은 고승석덕이 배출되었는가를 생각해보자.

미얀마 불교에는 재가불자들이 명상수행을 참으로 열심히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공덕을 쌓기 위한 단순한 기복형 신도도 없지 않지만, 몇 개월씩 사원에 가서 명상을 전문적으로 닦는 재가 불자들도 꽤나 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재가불자들은 명상사원에 접근하기가 매우 용이하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만 한다면 몇 년이고 절에서 먹고 자면서 거의 공짜로 수행할 수 있다는 데에 매력이 있다. 우리나라 불교에서 간화선을 표방하면서 노력하는데, 사실 좋은 스승을 앞장세워서 사찰을 개방하면 구름처럼 몰려든다고 자신한다. 템플스테이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는가. 미얀마는 이렇게 재가불자들이 쉽게 사원에 접근해서 명상수행을 할 수 있는 사원이 많고,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는 데에 매력이 있고, 경비가 없어도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장점이다.

사진2: 양곤 시내에 있는 한 명상사원.
12me02.jpg
12me02.jpg (8.56 KiB) 103 번째 조회

한국불자들이 왜, 미얀마로 가서 명상에 전념하는가. 여건이 좋고 누구나 가서 쉽게 입문(入門)이 자유롭다는 사실이다. 비구계 받는 데에도 까다롭지가 않다. 왜 출가해서 비구가 되겠다는 분들에게 너무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는지 모르겠다. 신심을 누구나 내는 것이 아니다. 그렇잖아도 출가자 수가 감소하고 있는 마당에, 한 분이라도 삭발염의해서 출가자의 길을 걷겠노라고 입문하면 우선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물론 미얀마에 가서 비구계를 쉽게 받고선 여기저기 배회하면서 견디지 못하고 결국에는 한국에 와서 혼자 외톨이식으로 돌아다니다가 몰락하는 길을 걷는 분들이 있지만, 그래도 재가불자들은 꾸준히 명상을 하는 분들을 많이 보아왔다. 비구계를 받으면 최소한 3년은 미얀마 승가에서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보며, 비구 공동체 생활에 전념해야지, 미얀마에 가서 비구계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담보가 되지 않는다. 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에 와서 어떻게 해보려는 상술은 이제 안 통한다고 본다.

미얀마 불교가 오늘날 세계 제일의 정통종가로 자리매김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필자가 태국에서 비구 생활할 때, 실론에서 비구들이 와서 미얀마로 가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왜 미얀마로 가서 명상하고 수행하러 가는지를 몰랐었는데 한참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남방 상좌부 권에서도 미얀마 불교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 실론의 원형 정통종가의 맥을 미얀마 불교가 계승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빨리어 삼장을 통째로 암송하는 미얀마 비구들의 집중력은 인정해줘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태국승가에서도 동의하고 있을 정도이다. 빨리어가 회화체로서는 사어(死語)가 되었지만, 경전어로서는 살아 있는데, 실제로 빨리어로 대화가 가능한 자들은 미얀마 승가에 계시는 10명 정도의 삼장 비구들이라고 한다. 스리랑카에서 빨리어 회화가 가능한 분은 없고 태국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빨리어 삼장과 문헌을 읽을 수 있는 분들은 실론 태국 서구에도 있지만, 대화가 가능한 분들은 오직 미얀마 승가에서 가능한데 그것도 10명 정도라고 한다.

미얀마어는 티베트어와 뿌리를 같이하는 언어이지 빨리어처럼 인도-유럽어족이 아니다. 그럼에도 인도 유럽어족인 빨리어를 자기들의 언어로 만들었다는 데에 대해서 정말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얀마 불교는 5백년 정도 단절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된 것이 이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출가 비구 삼장만 명상 스승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재가 거사로서 고승 못지않게 영향력을 갖고 있는 분이 바로 인도 미얀마 출신의 고엔카 거사이다.

사진3: S.N. 고엔카(1924-2013) 명상 대선사.
12me03.jpg
12me03.jpg (4.02 KiB) 103 번째 조회

고엔카는 원래 비즈니스를 했는데, 어느 날 편두통을 앓기 시작해서, 바킨(1899-1971) 문하에 들어가서 1955년부터 14년간 위빠사나를 수련하기 시작해서 인가를 받고 1969년부터 위빠사나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사진4: 인도 뭄바이 교외 아라비아 해안에 세워진 세계 위빠사나 명상사원.
12me04.jpg
12me04.jpg (5 KiB) 103 번째 조회

사진5: 세계 위빠사나 명상센터에서 수련하는 수천 명의 인도 불자들.
12me5.jpg
12me5.jpg (8.49 KiB) 103 번째 조회

고엔카는 2013년 입적에 들 때 까지 그가 양성한 1300명의 명상 지도사들을 통해서 매년 12만 명에게 명상을 지도했다. 주로 인도서부 지역에서 활동했지만, 인도 전역에 수십 개의 명상 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뭄바이 근처에 있는 세계 위빠사나 명상사원과 지부에서는 10일 코스가 유명하며, 일체 무료이고 다만 코스가 끝나고 자발적인 보시만을 받는 것으로도 누구나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정신은 버마 불교승가의 가르침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 불자들이 인도의 고엔카 문하에 까지는 언어 장벽 때문에 극히 소수(필자 같은)만이 경험했을 뿐이다.

12me6.jpg
12me6.jpg (5.57 KiB) 103 번째 조회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다시 돌아감:

접속 중인 사용자

이 포럼에 접속 중인 사용자: 1 그리고 손님들 0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