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10 / 미얀마 불교와 승가공동체

(보검법사)
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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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10 / 미얀마 불교와 승가공동체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금) 08 19, 2016 1:15 pm

미얀마 불교와 승가공동체

요즘은 미얀마라고 호칭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지만, 얼마전만해도 버마라고 불렀다. 그것은 미얀마의 인구구성 비율이 버마족이 다수인데서 기인했다. 사실, 미얀마는 버마족뿐 아니고 샨족 라킨족 몬족 카렌족, 카친족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버마족이 전인구 5천6백만의 70%를 차지한다. 미얀마의 종교분포를 보면 불교(89%) 기독교(4%) 이슬람교(4%) 정령 신앙(1%) 기타 신앙(2%)으로 형성되어 있다.

사진1: 1천여비구와 재가지도자들이 운집한 제18차 쉐긴 니카야 총회.
(2012.2 양곤 담마두타 제타원 토야사원)
10me00.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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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불교승가는 첫째 질서가 있고, 열정이 넘친다는 사실이다. 미얀마 어디를 가도 불교란 종교를 떠나서는 이야기가 안 된다. 불교승려만도 거의 50만 명에 육박한다. 물론 사미가 포함된 통계이긴 하지만, 인구 100명 중 1명은 스님이란 말이다. 띨라시란 비구니도 8만 명이다. 미얀마 불교는 아소카 대왕 시대부터 전해졌다고는 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없고 그 당시에는 미얀마 땅에 불교를 받아들일만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도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좌부 불교가 정착하기 전인 7세기에는 인도와 티베트에서 아리 불교란 밀교가 들어오기도 했는데, 11세기에 지금과 같은 상좌부 전통이 하버마인 몬족으로부터 전해졌다. 일찍이 몬족의 불교는 남인도에서 전해졌으며, 현재의 하버마와 태국의 반도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11세기에는 이미 하버마인 타톤에 빨리어 삼장이 있을 정도로 상좌부가 널리 퍼져 있었다. 바간의 아나우라타 왕(재위:1044-1077)은 타톤에서 빨리 삼장을 무력으로 획득했지만, 고승 쉰 아라한의 설득으로 불교로 개종한 뒤 상좌부를 본격적으로 수용했고, 하버마의 몬족의 문화가 많이 섞여서 바간문화가 형성되었다. 이후, 바간 불교는 실론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사실상 실론승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과 같은 불교 센터가 되었다. 물론 11세기에는 버마에서 비구를 보내서 무너진 실론 승가를 복원시켰고, 그 후에는 실론불교가 다시 바간에 역수입되기도 했다. 상좌부를 받아들인 바간 왕국은 많은 사원과 탑을 건립하고 1279년에는 비구니 승가가 형성될 정도로 불교가 융성했다. 1287년 몽골의 침입을 받으면서 승가가 기울기 시작했고, 이 무렵 실론 숲속에서 명상을 위주로 하는 삼림파 전통이 태국 아유타야에 전해졌고, 이 삼림파가 미얀마에도 수용되었다.
아래의 글에서 미얀마의 불교를 간단하게 요약했으므로 읽으면 많은 참고가 될 것으로 본다.

미얀마 불교-1
미얀마 불교-2
미얀마 불교 -3
미얀마 불교-4 '몽골의 침입, 전환점을 맞다' 이치란 박사
미얀마 불교-5 '제5차 경전결집회의' Dr.Lee Chi-Ran
미얀마불교-6 제6차 경전결집 미얀마 양곤에서
미얀마불교-7 삼장법사와 명상스승(이치란 박사)
불교중심 불교닷컴

미얀마 불교는 인도와 스리랑카의 원형불교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필자는 미얀마를 몇 차례 가서 명상수행도 하고 리서치도 했지만, 그야말로 상좌부의 진 맛을 느낄 수 있는 불교승가라고 본다. 지금 인도에서 불교 승가가 무너져버렸고, 스리랑카도 인도에서 전해졌던 그런 원형성은 상실되어 있는데, 미얀마 불교는 이런 원형불교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어서 느낌이 다르다. 사실, 미얀마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버마족은 언어적으로 티베트어와 가깝고 인류학적으로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아주 옛날 티베트 고원에서 버마의 저지대 평야로 내려와서 농사를 지으면서, 지금은 두 민족 간에 많은 차이를 보이지만, 아주 옛날에는 사촌 간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상좌부 전통은 미얀마가 대승 밀교는 티베트가 주도하고 있음도 우연은 아니라고 보며, 이들 민족의 성실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필자 혼자 생각해 본다.

미얀마의 비구들은 학업에 충실하고 재가불자들은 명상에 집중함을 알 수 있고, 보통 일반 불자들은 공덕을 쌓는 약간의 기복에 젖어 있음도 사실이다. 하지만, 불교를 후원하고 떠받치는 지렛대 역할을 하는 이런 기복 불교를 무조건 배척할 것만도 아니라고 본다. 우리 불교를 돌아보자. 이젠 기복 불교마저도 무너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총체적인 위기라고 하겠다. 한때는 기복 불교에 전적으로 의지하면서도 공사상을 너무 강조하고, 선사상을 너무 강조하여 불교를 공동화(空洞化)시켰던 것이다. 불교의 진리가 무아이고 공이고 선에서 말하는 무(無) 도 아니고 유(有)도 아니며 화엄에서 말하는 우주만상이 다 화장세계(華藏世界)임을 모르는바 아니지만, 승가가 약해지고, 신도 층이 얕아져서 외호를 못한다면 한국불교의 운명이 어떻게 되겠는가. 전부가 선원의 방석에만 앉아있으면 포교는 누가하고 불교는 누가 지켜간단 말인가. 통불교적인 다양성의 불교풍토가 되어야 각층의 신도가 모여든다고 믿는다.

미얀마불교처럼 승가가 튼튼하고, 재가불교도들이 신심도 있고 명상도 하면서 사원을 외호하는 그런 불교풍토가 정말 본받을 만하다고 믿는다. 한국에서도 미얀마로 명상수행을 가는 것은 그만큼 분위기가 좋고 여건이 편하고 뭔가 얻는 것이 있고, 진전이 있기 때문이다. 선에서는 얻을 것도 없고 진전도 후퇴도 없음을 알지만, 일단은 얻어야 하고 진전이 있어야, 얻을 것이 없음을 알게 되고 후퇴도 있음을 아는 도리가 아니겠는가.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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