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9 / 민족지성을 대표하는 불교지도자들(스리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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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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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9 / 민족지성을 대표하는 불교지도자들(스리랑카)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목) 08 18, 2016 1:42 pm

사진1: 전근대시대의 빨리 경전: 종려나무 잎으로 만든 패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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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서 실론(스리랑카) 불교 승가를 소개하면서, 실론에는 3개의 대표 종파가 있다고 했다. 여기서 종파란 용어를 썼지만, 중국불교 전통에서 연원하는 그런 종파개념하고는 다르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중국의 종파불교는 어떤 특정한 경론을 소의(所依)로 하여 성립하지만, 실론에서의 니까야(불교 부파)의 성립은 계맥 전수에 의해서이기에 종파성립과는 조금 다르다 이렇게 인식을 하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상좌부에서의 경율론 삼장은 동일하다. 계맥 또한 상좌부의 율장에 근거해서 전수되기에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우팔리 존자가 율장을 구송한 이래, 이 율장에 의지해서 계맥을 이어온 전통에 따라서, 자격 있는 비구 5명 이상이 증명한 가운데 비구계를 받으면 계맥의 전수가 이루어지고, 전계(傳戒)의 정당성을 부여 받은 것으로 인정받는다. 이런 계맥의 전수를 중요하게 여기기에, 근세에 실론 승가에서는 3개의 다른 부파가 성립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스리랑카의 고승들과 재가 불교지도자들은 민족지성을 대표하고,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불교가 국교는 아니지만, 거의 국교 수준이고, 불교는 바로 스리랑카의 지식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불교지성은 바로 민족지성을 대표하는 것이다. 아래의 글들은 실론불교를 다룬 글들이다. 많은 참고가 되리라 생각해서 첨부한다.

실론불교-1(상좌부 불교의 종가-1)

실론불교-2(상좌부 불교의 종가-2)

실론불교 -3(섬 숲속 암자 불교학파)

실론불교-4(실론의 민족불교운동)

실론불교-5(실론근대불교운동과 대각회-1)

실론불교-6(인도불교성지복원과 대각회- 2)

실론불교-7(식민통치와 영국의 불교학자들-1)

실론불교-8 (식민통치와 영국의 불교학자들 2)

위의 글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실론 불교는 역사가 오래되고 뿌리가 깊어서, 상좌부의 종가집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상좌부의 모든 것을 간직한 불교전통이라고 하겠다. 불교계의 고승석덕이나 재가불교지도자들에게 토를 단다는 자체가 불경에 해당한다. 스리랑카 불교는 승가내부의 요인에 의해서 승가가 무너진 것이 아니고, 외세의 침략에 의해서 승가가 추락했기에 외세를 물리치거나 스스로 물러갔을 때, 승가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사진2:비구계를 받는 구족계 수계의식(코테 스리랑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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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승가를 복원하는데 있어서 적당이란 말은 통하지 않았다. 상좌부의 종가처럼, 계맥의 정통에 따라서 계를 받는 것을 중요시 했기에 태국과 버마에서 계맥을 전수해 왔다. 대수롭지 않는 일 같지만, 우리는 여기서 스리랑카 불교에서 생각하는 비구의 정체성이 얼마나 계율에 의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대부분이 20세 전부터 불교에 들어오지만 20세가 되면 비구계를 받는다. 사미가 되었던지 비구가 되었던지 간에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스리랑카 승가의 전통이다. 비록 승가가 몇 차례 무너져서 태국과 버마에서 계맥을 역수입했지만, 빨리어 교학(敎學)은 그 뿌리와 역사가 깊다.

제4차 경전결집회의가 스리랑카에서 열렸는데, 기원전 25년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2040년 전의 일이다. 중국에도 불교가 전해지기 전의 역사이다. 1차 2차 3차 경전결집회의는 인도 마가다 지방에서 열렸고, 제4차는 스리랑카의 아누라다뿌라의 마하비하라(大寺=큰절)에서 개최된 것이다. 경전결집을 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삼장을 잘 보전하기 위해서였다. 인도에서의 결집회의란 경율론을 구송에 의해서 암기하여서 보존하고 제자들에게 전승하는 형식이었다. 인도에서 스리랑카에도 구송 전통에 의해서 삼장이 전수 되었는데, 그 당시 스리랑카에서도 이런 구송전통에 의해서 불법이 전파되고 있었다. 한데, 한 해에는 가뭄으로 흉년이 되어 비구들까지도 굶어 죽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구송에 의해서 삼장을 전달하던 비구들의 수가 줄어들면서, 승가는 위기의식을 느끼면서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4차 회의를 열고, 삼장을 기록하여 보전할 필요를 느꼈다. 이에, 삼장을 싱할라문자(스리랑카 알파벳)로 마른 나무 잎에 새기게 되었는데, 나중에 패엽경의 전통이 시작되었고, 삼장은 결집(편집)되게 되었다. 이 패엽경 삼장이 버마와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에 전달되어 그 나라 알파벳으로 기록하고 그 나라 말로 역경하게 되어서 상좌부 불교권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비구 승가는 비록 몰락할지라도 삼장은 스리랑카가 원조였던 것이다. 인도에서는 이미 불교도 없어졌지만, 빨리어 삼장도 산스크리트어로 편집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같은 상좌부의 뿌리인 설일체유부파는 산스크리트어로 삼장을 결집하였고, 이 산스크리트어 불전을 중앙아시아(서역)와 중국에 전해줬다. 율장도 산스크리트어로 된 법장부파의 사분율(四分律)이 전해지고, 이 사분율 율장의 파티목카(Prātimokṣa戒本)에 따라서 구족계를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상좌부의 율장과 동일하다. 십송율(十誦律)、오분율(五分律)、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과 함께 <사대광율(四大広律)>이라고 부른다.

사진3: 중앙아시아(서역)비구와 중국계 비구(투루판 화염산 근처 베제클릭 천불동 벽화 9-10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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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교리 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소승 대승으로 나뉘지만, 율장에 있어서는 근본 율장인 8부를 말한다. 비구 227계 비구니 311계이다. 중국으로 전해진 법장부파에서는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를 말하고 있다. 율장은 1.4바라이법(波羅夷法 four parajikas), 2.13승잔법(僧殘法thirteen sanghadisesas), 3.부정법(2不定法 aniyata), 4.사타법(30舍墮法nissaggiya pacittiya),5.바일제법(92波逸提法pacittiya),6.바라제제사니법(波羅提提舍尼法),7.중학법(眾學法),8.멸정법(7滅諍法)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사진4: 스리랑카 콜롬보에서 개최된 25차 세계불교도우의회에서 남북한 불교도대표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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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스리랑카 불교 이야기로 돌아가면, 현재의 스리랑카 불교 승가는 태국과 버마에서 율장에 의한 계맥을 전수해 왔지만, 교학연구나 불교학 연구수준은 상좌부에서 제일 앞서가고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스리랑카 출신 비구나 일반 재가 불교학자들을 보면 영어에 능통하고 전 세계에 널리 나가서 활동하고 있다. 인구가 적어서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불교에 의탁하지만, 실력은 뛰어나고, 인도 상좌부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빨리어 삼장을 결집한 것 등은 스리랑카 불교의 공로라고 본다. 또한 WFB나 세계불교승가회 대각회 등의 국제 불교 단체를 설립한 것도 스리랑카인데, 이것은 영국식민지에서 익힌 영어에 의한 세계화의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불교가 스리랑카 불교에서 참고해야할 것은 자존심은 상하지만, 태국과 버마에서 계맥을 다시 전수해 온 그들의 율장정신이다. 그리고 비구 승가를 복원한 눈물겨운 감동스토리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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