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8 / 승가공동체와 지도자(실론)

(보검법사)
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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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8 / 승가공동체와 지도자(실론)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토) 08 13, 2016 6:07 am

승가공동체와 지도자(실론)

현재 세계불교는 남방 상좌부권 티베트권 동아시아권 서구권 등으로 다양하다. 우선 인도불교를 일찍이 계승했던 스리랑카 불교계를 보면, 3개의 대표 니까야가 있다. 니까야란 원래 경전에 의한 비구들의 집합체였으나, 현대적인 의미의 부파 즉 종파(宗派) 개념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전해질 때, 분명 계맥에 의한 법맥이 존재했고, 승가의 정통성 또한 계승되었지만, 남인도의 판드야 왕조(6BC∼16CE)에 의해서, 5세기부터 11세기 사이에 수없이 공격을 받게 된다. 중국 동진의 법현법사가 실론에 갔을 때만 해도, 실론 불교는 왕성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사진1: 남인도에 있었던 판드야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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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론나루와 왕국의 비자야바후 1세가 1070년 섬을 통일하고 외세를 배격한 다음, 파괴되었던 사원들을 다시 복구했다. 이 무렵 비구계를 줄 비구 5명을 찾을 수 없도록 승가가 몰락했는데, 버마로 직접 가기도 하고 버마에서 비구들을 초청하여 승가를 다시 재건했다. 이렇게 해서 복구된 실론 불교는 버마와의 밀접한 관련 속에서 다시 전성을 구가하다가 16세기부터 몰아닥친 유럽의 식민지 확장과 기독교의 유입으로 불교는 거의 아사직전에 몰리게 되었다. 승가는 거의 활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던 것이다. 19세기에 이르러서 승가가 다시 복구되고,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웰리위타 스리 사라난카라 테로(1698∼1778) 스님의 요청으로 캔디의 키르티 스리 라자싱하 왕이 후원하여, 태국 비구인 우팔리 테라가 1753년 캔디에 와서 우빠삼빠다(Upasampadā구족계)를 주관했다. 이렇게 해서 시암 니카야가 탄생했다.

사진2:실론의 마지막 승 왕 웰리위타 스리 사라난카라 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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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불교 역사가 태국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지만, 이처럼 계맥을 새로 이어 왔기에 시암니카야(시암종=태국종파)로 새로운 부파 즉 종파가 되었다. 시암종은 6개의 지파로 구성되어 있는데, 6천개 사원에 2만 여명의 비구가 소속되어 있다. 이 시암종파의 비구들은 태국의 비구들과 비슷한 색상의 가사를 입고, 태국식의 구족계 의식에 따라서 수계를 받는다. 필자가 피부로 직접 느끼는 문제는 실론 비구들은 자존심이 상하지만, 역사적 사실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다는 자세이고, 태국 비구들은 어떤 면으로서는 단절된 계맥을 전수했다는 긍지를 갖고 있다. 다음은 미얀마에서 전해온 아마라푸라 니카야(Amarapura Nikaya)이다. 시암종이 농업을 배경으로 한 카스트 출신만을 대상으로 입문을 제한함에 따라서, 주로 해안가에 살던 살라가마 카스트가 이에 반발해서 버마로 가게 된다. 살라가마 카스트는 주로 개피를 생산하고 무역을 했으며, 용병군인들이 많았는데, 한 부유한 상선 선주가 재정적 후원을 하여 왈리토타 스리 그나위말라 티사 스님을 몇 명의 행자들과 함께 버마로 파견했다.

사진3: 왈리토타 스리 그나위말라 티사 마하테라(아마라푸라 창종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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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버마로 간 왈리토타 스리 그나위말라 티사 스님은 버마의 꼰바웅 왕조(1752∼1885)의 제 6대왕이었던 보도퍼야 왕(재위:1782~1819)의 배려로 버마 상가라자(승 왕)로부터 1800년에 우빠삼빠다(구족계)를 받게 되고 1803년에 실론으로 돌아와서, 당시 버마의 수도였던 아마라푸라의 이름을 따서 아마라푸라 니카야를 창종 했던 것이다. 아마라푸라 니키야는 무려 21개의 지파가 있는데, 모든 지파는 다양한 카스트와 관련되어 있다.

사진4: 암바가하와테 사라난카라 마하테라(라마난 니카야 창종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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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만나 니카야는 암바가하와테 사라난카라 스님이 1864년에 창종한 종파이다. 그는 버마에서 라타나푸나 비하라의 네야담마 무니와라 상가라자로 부터 구족계를 받고, 버마에서 한동안 주로 명상수행을 했고, 정법과 계율에 충실 한다는 다소 보수적인 파에 속하며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의 담마윳(보수파)파와 비슷하다. 숲속 암자에서 주로 명상을 하는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이 3개 파 외에도 몇 개의 파가 더 있다. 이들 니카야(파) 사이에 삼장에 의한 교리적 차이는 없으며, 다만 카스트 배경에 큰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스리랑카 불교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할 것은 비구니 승단의 부활이다. 아소카 대왕의 아들로 알려진 마힌다 비구가 실론에 불교를 전파한지 몇 년 후에, 아소카 대왕의 딸 가운데 하나인 상가미타 비구니가 와서 비구니 승단이 형성되어서, 1천3백년간 유지되다가 11세기에 비구니 계맥이 단절되어 버렸는데, 거의 1천년 만에 1996년 인도 사라나트(녹야원)에서 11명의 스리랑카 여자들이 비구니계를 받았다. 마하보디 소사이어티(대각회)의 주선으로 한국의 조계종 비구니 스님들이 계맥을 전수 해 줬고, 이후 대만 등지에서 온 비구니들이 계맥을 전수해 줬으며, 2005년 이래, 시암 니카야의 담블라 지파의 주선으로 비구니 수계의식이 수차례 열리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벌써 수천 명의 비구니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진5: 담블라의 동굴 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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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스리랑카의 비구니 스님들이 모여서 집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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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불교 승단은 단일 승가가 아니기에 단일 상가라자(승왕)는 존재하지 않고, 각 파의 수장은 있는데, 우리로 말하면 종정과 같은 지위이다. 미얀마도 13개의 종파가 있기에 상가라자는 없다. 태국과 라오스 캄보디아는 단일 승가이기에 상가라자(승왕)가 있으며, 캄보디아는 두 분의 상가라자가 존재하는데, 마하니카이(대중부파)와 담마윳(보수파)파의 상가라자가 따로 존재한다.

스리랑카에서는 국가의 행사가 있을 때는 이 3개 파의 종정 스님들을 동등하게 배려하는 것을 보았다. 또한 비구니 승가가 활발하게 발전하고 그 범위가 넓어지고 있어서 스리랑카 불교에 활력소가 되고 있으며, 비구 중심의 승단에 비구니 스님들의 활동과 역할이 증대되고 있음을 보면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스리랑카의 승가에서 보듯이 계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 계맥이 단절되자, 바다를 건너 태국이나 버마에서 계맥을 이어오는 그 정신이 대단한 것이다. 지리산 칠불암 서상계 운운, 대승계운운 할 것이 아니라, 계맥에 대한 확실한 승보가 절실하다고 하겠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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