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7 / 민주적 사부대중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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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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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7 / 민주적 사부대중 공동체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금) 08 12, 2016 9:35 am

민주적 사부대중 공동체

태국이나 미얀마 스리랑카 캄보디아 라오스 등지에 가면, 비구들의 모습은 항상 사프란(샛노란) 색의 가사나 아니면 황색 붉은색 등의 가사를 수하고 있음을 보게 되고, 사원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게 된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탁발을 나간다. 이 전통은 부처님 당시부터 이어져 오는 불교 승가의 생명과도 같은 아름다운 풍습이다. 동아시아 불교 권에서는 이런 전통이 사라지고 없다. 절에서 공양을 직접 해결해야 한다. 한국불교에서는 절에서 발우공양을 했다. 함께 모여서 공양을 하고 나면 대중공사란 것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사찰에 따라서는 하겠지만, 극히 소수의 사찰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모든 분야가 현대화되다보니, 대중공사도 다른 형태로 진화했을 것이다. 발우공양 후에 하든지 아니면, 종무소에 모여서 하든지 그 장소는 상관없다고 본다. 다만 승가의 회의가 민주적이냐에 초점이 있다.

사진1: 부처님과 그의 제자들이 탁발공양을 받는 그림, 18세기 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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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승가(僧伽)라고 말하는 불교의 공동체는 본래 인도에서 유래된 말이며, 공동체의 실체였던 데서 한자로 음차(音借)한 것이다. 인도에서는 상가(Sangha)라고 했다. 빨리어나 산스크리트어로 ‘연합’이란 의미가 강하다. ‘회의’나 ‘공동체’란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단어이다. 이 상가란 단어는 불교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가 아니다. 인도사회에서는 어떤 연합체나 공동체나 총회를 열 때, 상가라고 했다. 이 용어는 종교단체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불교 이전에도 집 없이 유행하면서 도를 닦는 수행자들이 있었고, 상가가 존재했다. 고오타마 싯다르타 태자도 처음엔 이런 상가의 수행단체에 들어가서 수행을 했다. 나중에는 독립해서 홀론 독각수행을 하게 되었지만, 상가는 불교 이전에도 존재했었고 자이나교에도 상가라고 불렀다. 아무튼 어떤 수행단체나 다른 종교에서 상가란 용어를 사용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얼마만큼 민주적인 대중공동체로서의 모임이었는가 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

고오타마 싯다르타가 성도를 하고 제자가 생기고 상가가 형성되면서 불교의 상가는 시작되었는데, 경전이나 율장을 보면 상가의 공동체 생활이 매우 민주주의적이고 대중합의체에 의해서 상가가 운영되고 관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전통은 인도 실론 동남아시아의 상좌부 상가에서도 그대로 계승해서 지켜가고 있다. 북방으로 전해진 북방 불교권도 마찬가지로 이 상가 즉 승가가 민주주의적인 대중 합의체인 공동체 주의에 의해서 운영되고 관리되고 이어져 오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런 승가의 공동체적 정신은 한국불교의 큰 방 대중공사나 발우공양에 까지 이어지고 이어졌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불교를 억압하고 탄압해서 불교의 승가가 거의 해체되었을 때는 불가항력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실줄 같은 이런 공동체적 생명의 씨앗을 보존해왔다. 해방 후 승가가 복원되면서 이런 전통은 이내 살아나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왜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났고, ‘94년 종단개혁운동이 일어났고, ’98년 정화개혁사태가 발발했으며 현재도 부단하게 총무원장 직선제니 간선제니 하는 논쟁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것은 승가 공동체 정신과 직결되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선거에 의해서 종회의원을 뽑고 선거에 의해서 선거인단을 뽑고, 거기서 총무원장을 선출하고 종정도 원로회의에서 선거로 추대하지만, 핵심은 승가의 공동체정신인 민주주의에 얼마만큼 충실하냐에 초점이 있는 것이다. 지난 몇 회에 걸쳐서 승가 공동체에 대한 정의와 구성원들에 대해서 담론을 했는데, 승가란 출가중과 재가중의 합동 공동체임을 밝혔다. 물론 사원은 출가중이 직접 살고 있는 현장이지만, 그렇다고 출가중의 전유물은 아니고 재가중도 함께 공유하는 공동체임을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남방 상좌부의 전통은 너무나 보수적이어서, 사원은 비구들만의 공간이 더 강하지만, 그래도 재가불자도 함께 공유하는 장소임을 알아봤다. 재가불자가 사원에서 직접 거주는 하지 않지만, 출가중의 외호대중으로서 함께 운영 관리하고 있음은 오랜 전통이었다. 물론 남방 상좌부에서는 사원의 주지나 승가의 어떤 직위를 갖는 지도자를 뽑는 데는 이에 자격 있는 비구를 승가 내에서 선출해 왔고, 재가에서는 직접적인 선출 권을 행사하지는 않지만, 간접적인 여론을 통해서 호소는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진2: 세계 각국의 비구(빅슈)들이 모여서 국제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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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국가들에서는 왕권이나 정치 권력자나 국가권력의 영향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비교적 승가 내부의 여론과 추천이 작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 우리나라 불교로 눈을 돌려보자. 모든 종단이 다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계종이 우리나라 불교의 대표승가임으로 예로 들어보면, 조계종은 종헌종법에 의해서 원장 종정을 선출하고 있다. 최근엔 총무원장 직선제가 이슈가 되고 있다. 직선제건 간선제건 필자의 관심은 재가불자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승가란 공동체 구성원에 있어서 출가중만이 아닌 재가중도 포함되는 사부대중 공동체란 인식이 받아들여져야 하고, 총무원장 종정 선출에 까지 재가가 투표권을 갖기에 앞서서 사찰운영 관리에 참여하고 주지 선출 정도에는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 또한 문제점은 사찰마다 신도회가 어느 정도 활성화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는데, 모든 사찰이 다 민주적인 신도회로 구성되어 있는지가 의문이다. 아무튼 재가중도 승가구성원이고 어떤 형식으로든지 주지선거에 신도회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한다는 취지이다. 총무원장이나 종정추대에 직접 참여하는 권리가 미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민주주의적인 방식에 의해서 의사가 반영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필자의 개인 견해이다.

사진3: 중국의 한 사원에서는 재가승들이 가사를 입고 의식을 집전하고 있다(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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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선진화되어 있는 민주국가로 성장했다. 민주국가에 있는 한 종교이기 때문보다는 불교승가의 전통은 본래 민주주의적인 공동체임으로 ‘민주주의적인 사부대중 공동체’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사부대중공동체란 출가중만이 아닌 재가중도 포함하는 사부대중 공동체를 말한다.

사진4: 인도의 불자들이 한 법회에 참석해서 법문을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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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 불교는 한 차원 더 성숙해 가야하고, 지금과 같은 위기시기에는 사부대중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그럴라치면 민주주의적인 사부대중공동체가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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