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6 / 승가공동체와 재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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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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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6 / 승가공동체와 재가불교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목) 08 11, 2016 8:28 am

승가공동체와 재가불교

사진1: 승속이 함께 모여서 불교와 경제에 대해서 세미나를 개최했다(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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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승가 공동체는 남방 상좌부와 티베트 불교에서 강하게 살아 남아있으며, 중국 베트남 대만 등도 비교적 건실하게 유지되고 있다. 한국불교는 이 승가공동체의 존속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하고 어떤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본다. 물론 승가 공동체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나 바람은 변함없지만, 현실은 우리의 의지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몇몇 사찰은 기백 명에서 몇 십 명 정도의 대중생활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이런 대중 공동체 생활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막연하게 앞으로 어떻게 되겠지 하는 것만으로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전통방식의 승가공동체가 해체되면, 우리는 일본 불교에서 보는 것과 같은 양상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하고 추정해 본다. 출가승들에 의한 승가공동체가 건실해야 불교가 생명력 있게 살아 움직인다는 논조로 지금까지 담론을 유지해 왔다. 이제 재가불자나 재가불교에 대해서 한번 논의해 보자.

상좌부 권에서의 재가불자의 위상은 분명하다. 물론 남녀 재가불자가 출가승과 함께 승가의 구성원임은 틀림없다. 재가불자가 없는 승가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재가불자는 승가의 외호대중으로서, 승가를 받들고 존경하고 경제적 지원문제를 담당해야 한다. 부처님 시대부터의 전통이다. 재가불자가 일단 공양을 제공하고 꼭 필요한 생필품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출가승가는 유지되지 못한다. 특히 상좌부 불교 권에서는 이런 원칙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일부 사원에서 자체적으로 공양을 해결하고 출가승가 공동체 관리나 운영을 직영한다고 할지라도 극히 일부이고,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큰 틀에서는 출가비구는 수행 위주의 생활 패턴이고, 재가불자는 외호 대중으로서 사원의 운영과 관리에 있어서 경제적 책임을 분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가비구는 수행하고 공부해서 재가불자들에게 진리(법)를 설파해주면서, 종교적 귀의처로서의 성직자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재가불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의문을 풀어주는 상담역할도 해줘야 한다. 또 재가불자들의 공양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법문뿐 아니라, 때로는 공덕을 찬양하고 복도 빌어주는 역할과 기능도 마다하지 않는다.

상좌부 권에서의 재가불자들은 우파사카(Upāsaka優婆塞:清信士) 우파시카Upāsikā優婆夷:清信女)로서 5계를 지키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승가의 외호대중으로서 역할을 하고, 승가의 지도아래 불교공부도 하고 명상도 하면서 신행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재가 신도중에서 빨리삼장에 달통하고 명상을 통해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서, 출가승인 비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빨리삼장에 능통하고 명상을 통해서 견성을 했다고 할지라도 출가승은 아닌 것이다. 출가승은 구족계를 받아서 227계를 지키면서 사원에서 다른 비구들과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경전에 달통하고 내적 경지가 뛰어나다고 해서, 비구와 동등한 위치가 아니다. 동등한 위치를 원하면 비구로서 출가해야 한다. 이런 원칙을 철저하게 고수하고 전통을 지키는 것이 즉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승가이다. 이것은 상좌부불교의 승가공동체에 대한 실상이다. 한데 대승불교시대에 오면 승가공동체에 조금 변화가 온다고 보는데, 필자의 개인 견해로서는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본다.

교리상으로 불교철학이나 사상적으로 발달해서, 소승과 다른 대승이 출현하고 밀교가 출현하고 선종불교가 출현했지만, 승가공동체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계율도 그대로 지키면서 승가가 발전해 왔다고 본다. 대승불교이기에 출가나 재가나 구별이 없고, 누구나 깨치고 불법을 많이 알면 승속 구별 없이 도인이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관점이고 불교 전통 승가의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본다. 중국에서 이통현(李通玄:635~730) 장자가 《신화엄경론(新華嚴經論)》을 지어서 화엄경 해석이 뛰어나다고 해서 그가 고승으로서 인정받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물론 그의 경지가 뛰어나고 지혜가 출중한 것은 존경 받을만한 일이고, 방 거사나 소동파 같은 거사들 그리고 한국에서의 부설 거사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뛰어난 거사들이 존재했다. 물론 지금도 출중한 재가 거사들이 있고, 지혜가 뛰어난 분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비구계를 받지 않았기에 승려는 아닌 것이다. 출중한 거사가 있다고 해서, 계도 받지 않고, 승가공동체에서 생활도 하지 않는데, 출가승과 동격으로 보는 관점은 불교의 전통 승가관하고는 어긋나는 일이다.

유마거사도 출가승은 아니지만, 그의 수행이나 지혜는 뛰어나고 출가승과 다름없는 분이지만, 비구는 아니었던 것이다. 유마거사를 보고, 재가의 거사들도 유마거사와 같은 높은 경지의 지혜인이 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출가 비구승은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원효대사가 출가했다가 결혼해서 자칭 소성거사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원효스님 원효성사라고 부르고, 만해도 승려였으나, 나중에 비승비속으로 생활했지만, 지금은 만해선사 만해 큰스님으로 부르고 있다. 물론 원효대사나 만해선사 같은 분들의 수행과 경지로 봐서, 이렇게 호칭해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승가의 전통인 출가승의 관점에서는 견해가 다른 것이다. 또 일본은 출가승이든지 재가승이든지 관계없이 거의가 결혼을 하기 때문에 이 분들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지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 불교에서도 일본식 승려들이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 게다가 재가 종단이 있고, 양복 입은 재가 불교의 성직자가 있기도 하는데, 이런 종단에 대해서는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인지 잘 모르겠다. 지금 여기서 필자가 담론을 펴고자하는 것은 재가불자의 입장이다.

재가불자는 재가불자로서의 위상이지, 출가빅슈(비구)와는 동등하지 않다는 관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빅슈는 남방 상좌부의 비구와 같은 출가승(비구 비구니, 빅슈 빅슈니)을 의미한다. 삭발염위하고 결혼을 했다든지 양복을 입고 승려신분을 유지한다든지 하는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출가 빅슈(빅슈니)를 의미한다. 이 분들을 전제한 재가불자는 어디까지나 신도일 뿐이다. 팔만장경을 달통하고 참선을 해서 화두공안을 타파했다고 할지라도 출가 빅슈(빅슈니)는 아닌 것이다.

사진2: 불교신자들이 영험이 있다는 한 기도처에 모여들고 있다(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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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불교에서는 이런 부분이 혼동되어 있고, 출가빅슈나 재가거사들 역시 뭔가 자기 입장을 잘못 정의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재가불자들에게 법사나 포교사 칭호를 부여한 것은 전법차원에서 포교차원에서 불교의 확장을 위한 포교의 역할과 기능이지, 법사나 포교사가 즉 출가 빅슈(빅슈니)는 아니다. 출가 빅슈가 삭발염의만 했지 내용상으로는 계율도 지키지 않고 가족을 은밀하게 거느리고 있다면 과연 빅슈로 볼 수 있을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불교는 이런 부분이 애매하고 혼동되어 있고 정리가 되어 있지 않고, 여기다가 헌법상 신교의 자유라는 국민기본권 보장, 그리고 기독교의 영향 등으로 인해서 이런 부분이 희석되어 있다. 기독교는 그리스정교와 로마 가톨릭, 성공회, 개신교 등으로 분파되면서 독신이냐 결혼하느냐로 변천해서, 특히 한국은 미국의 기독교 자유교파가 주로 들어와서 불교에도 다소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생각되고, 특히 일본 불교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이제 우리불교의 상황으로 눈을 돌려보자. 재가불교 지성인들이 종단에 대립각을 세우면서, 똑바로 하라고 외치고 있다. 출가승들은 재가불자면 재가불자로서 위치를 지키라고 하면서, 서로 승가구성원으로서의 사부대중에 대한 정의마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승가라고 하면 출가승과 재가불자가 함께 구성되는 것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고, 다만 참종권(參宗權)문제는 어떻게 유권해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출가승 위주인 승단에 재가불자가 어느 선까지 참여하고, 사찰운영이나 관리에 어느 정도 참여하느냐 하는 문제는 서로 논의해서 결정하기에 달린 문제이다. 종정추대나 총무원장 선출에도 재가불자가 참여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도 논의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승가의 전통상으로 보면 재가불자가 거기까지 권리가 미친다고는 보기가 어렵지 않겠나 하는 개인 생각이다. 재가불자도 사찰운영이나 관리문제는 참여가 가능하다고 보며, 포교를 위한 전법역할도 가능해야 한다고 본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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