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5 / 승가공동체와 현대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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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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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목) 06 16, 2016 12:03 pm

한국불교 달라져야한다-5 / 승가공동체와 현대사회

전체글글쓴이: lomerica » (수) 08 10, 2016 7:07 am

승가공동체와 현대사회

사진1: 국제 불교 행사에 참석한 스리랑카 라자팍스 대통령(현직일 때)과 캄보디아 텝봉 승 왕 등 세계불교지도자급 고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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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승가공동체 문제를 담론할 때, 남방 상좌부를 모델로 삼지 않을 수가 없는데, 부처님 승가이후 현재까지 승가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지역은 남방 상좌부 불교교권이기 때문이다. 미얀마나 태국에 가면 승가가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음을 이내 알게 된다.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 불교 승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지금 꼭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불교사적으로 보면, 실론이 인도의 초기불교 승가와 가장 가깝지만, 주지하다시피 실론 불교 승가는 중간에 몇 차례 타격을 입었다. 다행하게도 중세 시대에 실론 불교승가는 버마로 전해졌다. 하버마로 전해진 실론불교승가는 몬족불교에 의해서 태국불교의 기원이 되었고, 또한 버마에 집중적으로 전파되었다. 현재 실론(스리랑카) 승가는 태국과 버마에서 다시 전해진 승가이다. 말하자면 계맥을 태국과 버마에서 역수입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장황한 설명을 할 수는 없고, 다만 한 가지 분명하게 강조하고 싶은 말은 인도-실론-버마(태국)로 전해진 승가는 다시-실론으로 전해졌다는 것과, 태국과 버마에서 다시 전해진 실론의 현재 승가는 또 인도와 네팔로 승가의 전통을 전해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인도 콜카타 지역과 방글라데시의 상좌부는 버마에서 다시 전해졌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참으로 기막힌 사연이다. 남방 상좌부의 독특한 전통으로서는 계맥의 전수이다. 비구계맥을 전수해 줄 비구가 없으면 비구 승가는 단절되고 만다. 한때 실론은 비구가 없어지고, 사미만 있었는데, 태국과 버마에서 계맥을 계승해 왔던 것이다. 중세 시대에 버마 또한 실론에서 비구계맥을 이어왔던 것을 보면, 계맥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알 수 있고, 미얀마의 바간이라는 데를 가보면 천불 천탑이 있는데, 한때 이 지역에는 실론 불교가 전성을 이루었다고 한다. 결론은 미얀마나 태국이 인도 실론의 초기 원시불교 승가의 전통을 어느 정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티베트는 인도의 딴뜨라 불교의 전통을 직수입했는데, 이 당시(6세기 이후) 인도불교는 실론에 전해졌던 부파불교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대승불교와 밀교가 섞인 딴뜨라 불교가 티베트에 전해졌다. 딴뜨라는 힌두교의 의례와 의식이 불교에 접목되어서 바즈라야나(금강승) 불교로 발전되었고, 이런 전통이 티베트에 그대로 전파되었던 것이다. 날란다대학의 중관 유식학파의 이론이 대거 티베트에 전해졌고, 인도에서 유행하던 딴뜨라가 가미되어서 오늘날 티베트 불교의 전통으로 확립되었다. 하지만, 율장만큼은 근본설일체유부의 율장에 의해서 승가가 운영되었고 현재까지도 이 율장전통은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중국불교는 기원전후 서역(이란)과 북인도에서 중앙아시아와 타클라마칸 사막의 오아시스 나라들을 경유해서 중국에 전해졌는데, 부파와 초기대승불교가 전해졌다. 하지만, 율장은 담마굽타카(법장부)의 사분율이 전해졌고, 승가는 법장부의 율장에 의해서 수계를 받았고, 이 전통은 동아시아의 계율 전통이 되었다. 학문적으로는 5부파 율장인 광율이 다 들어 왔지만, 실제 수계의식은 법장부의 사분율이 표준이 되었던 것이다. 대승계 운운하고 범망보살계 운운은 율장의 역사와 동아시아의 수계역사를 모르는 무지의 소산이거나 비구가 아님을 호도하기 위하여 적당하게 대승계운운 서상계운운 범망계운운 하는데, 기막힌 일이다.

사진2: 미얀마 만달레이에서 아침 일찍 비구와 사미승들이 탁발을 해서 사원으로 돌아오고 있다.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마다 탁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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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율장상으로는 남방 상좌부의 비구나 동아시아 대승불교의 빅슈는 다 같이 부처님 승가의 율장을 따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 법장부는 화지부에서 분파했고, 화지부는 스타비라파에서 분파한 상좌부 계통이기 때문이다. 교리적으로는 소승 대승이 있고, 밀교가 있지만, 율장상으로는 상좌부 티베트 중국 위주의 동아시아 불교의 승가 공동체는 한 뿌리이다. 다만 일본은 율장대로 구족계를 받지 않기에 제외해야 하지만, 베트남 대만 한국은 당연히 동아시아의 주류 불교로서 율장상으로는 남방이나 티베트 승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대승불교라고 해서, 율장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논리이고, 총림의 청규만이 계율이라고 고집해서는 안 되고 율장의 전제하에 총림의 형편에 맞는 청규가 가미된 것으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승가공동체에 대한 담론을 하고 있는데, 승가는 기본적으로 율장이 헌법이 되고, 계맥이 상속하는 전통에 의해서 승가의 맥이 이어진다는 엄연한 철칙이다. 이런 승가의 원칙이 무너진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승가가 한번 형성되어서 운영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며, 불교 존속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하지만 한번 승가공동체가 무너지고 해체되어 버리면 일본불교처럼 개인주의 불교가 되어 버린다. 물론 사찰에 따라서, 어느 정도 공동체가 유지된다고는 하지만, 율장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승가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의 승려들이 온 몸으로 생명을 다해서 저항했지만, 일제는 대처제도를 강행 시켜서 우리 불교의 승가를 망쳐버렸던 것이다. 이 잔재가 지금도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으며, 결국은 해체과정으로까지 몰고 가고 있다. 출가자수 급감이 문제라기보다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일제의 조선불교 대처화에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했으면 한다.

자, 이제 우리의 한국불교로 눈을 돌려보자. 승가가 너무 혼란스럽고 원칙이 없지 않는가. 해체과정에 돌입한 것 같은 불안한 상황이다. 사찰과 승려 수와 군형이 맞지 않고, 사찰업무 또한 과중해서 스님들만으로는 처리하기가 버거워서 재가종무원을 고용해서 업무를 볼 정도로 일이 많다. 수행하고 교육이나 포교에 전념해야할 출가자가 사판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우리 승가구조의 문제점이라든지, 율장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원생활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가 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연구해서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머지않아서, 어떤 결과에 이를지 아무도 모르지 않겠는가. 이런 지적은 승가를 폄하하고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건실한 승가의 운영과 존속을 위한 걱정이면서 이래선 안 되겠다는 절규라고 받아들였으면 한다.

출가자수가 급감하고 사회가 산업화되어 가면서 율장에 의한 승가공동체 생활이 점점 어려워 간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우리 불교가 승가 공동체 생활을 떠나서는 존재의의가 없지 않겠는가. 불교의 생명은 승가에 있고, 출가 승려가 없는 승가란 상상할 수도 없다. 재가가 어떻게 승가를 대신할 수 있으며, 출가승가와 동등한 입장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대승불교에서는 재가나 승가나 동등하다고 한다면 이런 관점은 어딘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대승보살사상의 이상이 재가도 수행하고 교육하고 전법하고 승려 이상으로 어떤 경지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지만, 그러나 승가라고 했을 때는 율장에 의한 수계에 의해서 출가와 재가의 분한이 달라진다. 재가가 아무리 뛰어난다고 해서, 비구계를 받지 않는 이상 비구 대접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고, 비구계를 받고도 속인처럼 행동한다면, 어떻게 비구로서의 대접을 받을 수 있겠는가. 삭발염의만 했다고 해서, 존경받아야 한다는 허위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재가가 계를 잘 지키고 수행 잘한다고 해서, 출가 비구(비구니)처럼 존경받아야 한다는 것도 어딘지 이상하다. 충실한 불자로서 존경받을만한 거사로서 인정받으면 그것으로 족해야 하는데, 그 이상의 어떤 것을 바란다면 이 또한 불교의 전통에 어긋나는 자세라고 보며, 다음 회에서 이 무제를 한번 다뤄보겠다.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승가가 어떻게 존속해야 하느냐가 관건이고, 시대의 변화에 적응해서 승가 공동체에 변화를 가져와야 하느냐 아니면 원칙을 고수해야 하느냐를 토론하고 공청회를 열어서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마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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